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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正喜), 자(字)는 완춘(阮春), 추사(秋史)라고 호를 썼다.
경주(慶州) 사람 유당(酉堂) 김노경(金魯敬)의 장자(長子)이며, 정조
(正祖) 10년(1786년, 일본 천명(天明) 6년, 청나라 건륭(乾隆) 51년)
에 출생하여 24세 때 아버지 유당(酉堂)이 청(淸)나라에 가는데 따라
가서 외유(外遊)하고, 청조(淸朝)의 명현(名賢) 대유(大儒)와 학연(學
緣)을 맺어 경의(經義)를 찾아가서 한묵(翰墨)을 읽는 등 역지(役地)
경학(經學)의 깊은 경지까지 도달했다. 청조(淸朝) 문화(文化)의 핵심
을 잡았다. 귀국 후 학문은 대단히 진보했고, 경사(經史), 시문(詩文),
금석(金石), 서화(書畵)의 막힘이 없었고, 울연(蔚然)한 대가가 되어
새로이 실사구시(實事求是)의 학문을 선上(宣布)하며, 반도(半島) 수
백년 이래의 누풍(陋風) 일세(一洗)에 위대한 업적이라고 전해진다.
불행하게도 뜻밖에 기화(奇禍)로 남해(南海) 제주도로, 혹은 북선(北
鮮) 북청(北靑)으로 유배의 비참을 보게 되었다. 그 탁월한 식견(識
見)과 청풍(淸風) 고절(高節)과 더불어 나중에 식자(識者)의 사모(思
慕)와 흠앙(欽仰)을 더하게 되었다. 벼슬은 병조참판(兵曹參判)으로
마치고 철종(哲宗) 7년(1856년, 安政3년 咸豊6년) 과천(果川)에서 죽
고 그곳에 매장됐다. 유적은 대부분 화재(火災)로 소실(燒失)했지만
여전히 마을 내에 직계(直系) 자손(子孫)이 현주(現住)하고, 많은 필적
(筆跡) 편액(扁額)을 가지고 있다. 그 외에 귀조(歸朝) 당시에 청나라
에서 지참(持參)해서 이식(移植)했다는 백송(白松)이 있고 자손이 아
직도 관리하고 있다.
164 예산군지(193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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