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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죽정(竹亭)
죽정은 지금의 고덕면(古德面)(원래 고산면(高山面))에 있다. 여러
채의 초가가 있었다. 이춘원(李春元, 호 구원(九?))이 어렸을 때 이
안눌(李安訥, 호 동악(東岳) 또는 학림(鶴林)이라는 자와 함께 이 죽
정(竹亭)에서 만났다. 구원과 동악은 둘 다 당대의 유명한 시인이며
학림은 그림으로 유명했다. 구원이 학림에게 대나무 그림을 벽 가득
히 그리게 하고, 구원과 동악도 각자가 일률(一律)로 어람해서 그 벽
위에 묘사했는데, 임랑(淋浪)의 반영해서 이것을 구경하는 자들은 모
두가 절품(絶品)이라고 칭하고 죽정(竹亭)의 이름도 이것 때문이라고
한다. 지금은 없다.
8. 이왕직(李王職) 유적(遺蹟)
신암면(新岩面) 용궁리(龍宮里)의 산기슭(山麓, 면사무소에서 북서
(北西) 약1리)에 있고, 이조(李朝) 영조대왕(英祖大王)의 차녀(次女)
화순옹주(和順翁主)의 분묘(墳墓)이며, 오직 인효(仁孝)와 정숙(貞淑)
의 덕(德)은 생애를 통해 남편 월성위 김한신(月城尉 金漢藎)이 죽자
십 여일 간 한 방울의 물도 한 술의 밥도 먹지 않고 밤낮으로 통곡
(痛哭)해서 드디어 순사(殉死)했다. 영조대왕(英祖大王)은 정열(貞烈)
을 가귀(嘉貴)해서 정려비석(旌閭碑石) 등을 이곳에 건립해 줬다고 전
해진다. 친필(親筆)의 각자(刻字)와 함께 현존한다.
9. 추사(秋史) 김완당(金阮堂)의 유적
신암면(新岩面) 용궁리(龍宮里)에 있다. 완당(阮堂)의 이름은 정희
제3장 사적(事蹟) 1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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