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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 아산만(牙山灣)에 입항, 다음날 아침 구만上(九萬浦)에 상륙, 즉
시 무장해서 밤을 틈타 덕산면 옥계리(玉溪里)에 도착했다. 일행은
대원군의 아버지 남연군(南延君)의 분묘(墳墓)를 발굴했다. 묘소(墓所)
의 수위(守衛) 급(及) 가동민(伽洞民)은 기이(奇異)한 서양인 내구(來
寇)로 놀라 도망갔다. 오페르트는 묘소를 발굴했지만 관구(棺柩)는 견
고(堅固)해서 쉽게 개관(開棺)할 수가 없었고, 퇴각(退却)하는데 이용
할 썰물 시각이 다가와서 목적을 다하지 못하고 도망쳤다.
6. 이산현(伊山縣)
이산현은 지금의 덕산(德山)이며 가야(伽倻) 동구(洞口) 밖에 있고,
백제 때는 마시산현(馬尸山縣)으로 후(後)에 의마장(義馬場)이라는 전
설이 있다.
청안(淸安) 사람 판상(板商)하는 자가 무인(戊寅)년의 겨울에 갈질
(葛疾)에 걸려 고덕(古德) 시장에서 죽었다. 소지(所持)한 말이 사其
밤낮을 헤매며 그 시체를 지켰다. 기갈(飢渴)하면 가끔 마을에 들어
가 짚을 먹고 물을 마시고 금방 또 시체 옆으로 돌아와 슬프게 울었
다. 아무리 생각해도 호소하는 것 같아 마을사람이 처음 알고 가보니
시체는 판상(板上)에 있는데 오연(烏鳶)도 감히 울지 못하고 말은 끊
임없이 높이 울었다. 여러 사람들은 이것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
자가 없었다. 그리하여 그 시장을 명칭해서 말하기를 의마장(義馬場)
이라고 하였다.
162 예산군지(193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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