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 310페이지

162페이지 본문시작

섬기지 못하면 마침내 필연코 해가 되고 마는 법입니다. 지금의 대신 중에
중립(中立)하는 사람들은 앞날에 반드시 국사(國事)를 그르칠 것이니, 비록
부모와 임금을 시해(弑害)하게 되지는 않을지라도 그 해가 많을 것입니다.
부자의 사이는 남이 말하기 어려운 바이지만 참소한 말은 쉽사리 받아들여
지는 법이니, 성상께서 궁중(宮中)에 계실 때 마땅히 더욱 계신(戒愼)하셔야
할것입니다.”
하였다.
◎1517년(중종12)4월27일(임신)
홍문관이아뢰기를,
“《대학》을 진강할 때는 시강(侍講)하는 사람들이 반드시 내용을 탐구하고
정미(精微)한 이치를 다 안 사람이어야만이 고문(顧問)에 대비하게 될 것이
니, 직제학 이자·응교 김정·교리 조광조·수찬 김구로 번갈아 진강하게
함이어떠하리까?”
하니,‘그리하라’전교하였다.
◎1517년(중종12)6월28일(임신)
병조판서고형산등이정청(政廳)에서아뢰기를,
“만포(滿浦)는 곧 심처 야인(深處野人)이 왕래하는 곳이라 그들의 정황을 탐
문하는 일이 더욱 중한데, 근자에 탐문한 사변(事變)을 상세히 계문(啓聞)하
지 못한 것은 필시 식견과 문장이 짧은 까닭이었을 것입니다. 옛날에도 이극
균이 이 소임을 맡아본 일이 있었으니, 이제 문신(文臣) 가운데 재간이 있어
감당할만한자를자급(資級)을따지지않고의망하는것이어떻겠습니까?”
하니,‘그리하라’전교하매, 곧 최세절·반석평·유옥을 의망하니 최세절
195)
에 낙점(落點)하고‘초삼자(超三資)
’라고 어서(御書)하였다. 서성군 이미
(瑞城君李嵋)를 복성군(福城君)으로 고치고 강혼을 공조판서로, 이우를 사
헌부 지평으로, 윤자임을 홍문관 교리로, 김구를 수찬으로, 정응을 박사(博
士)로,손수를저작(著作)으로,박윤경을정자(正字)로삼았다.
195)초삼자:3자급을초승(超陞)함
7장조선왕조실록에기록된내용│161

162페이지 본문끝



현재 포커스의 아래내용들은 동일한 컨텐츠를 가지고 페이지넘김 효과및 시각적 효과를 제공하는 페이지이므로 스크린리더 사용자는 여기까지만 낭독하시고 위의 페이지이동 링크를 사용하여 다음페이지로 이동하시기 바랍니다.
상단메뉴 바로가기 단축키안내 : 이전페이지는 좌측방향키, 다음페이지는 우측방향키, 첫페이지는 상단방향키, 마지막페이지는 하단방향키, 좌측확대축소는 insert키, 우측확대축소는 delete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