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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하는 도중에 눈앞에 펼쳐진 넓은 원천(元泉) 옥야(沃野)를 바라보고
매우 칭찬하여 국사보(國賜洑=나라가 보를 만들어줌)를 촌민(村民)에
게 하사하므로 수리(水利)의 편이 좋아졌다. 지금 신원(新院), 원천(元
泉), 원평(元坪) 3개 리(里) 촌민(村民)들이 수리계(水利契)를 설치해
서 이곳을 관리한다. 그 당시 촌민은 홍(洪) 어사(御使)의 공(功)을 기
념하기 위해 비석을 건립했다. 춘풍(春風) 추우(秋雨) 수백년 지난 지
금까지도 비문은 명료하며, 역탑리 한구석에 엄숙하게 서서 당시를
생각하게 한다.
3. 삽교(橋)
명(明)나라 조선(朝鮮)국사(國使)가 통과하므로 이 내[川]에 광대한
돌다리[石橋]를 건설하여, 이것을 삽교(揷橋)라고 했지만, 그 후에 스
스로 무너져 석재(石材)는 물속으로 매몰했다.
4. 봉조원(奉詔院) 속칭 봉정리(鳳亭里)
중국 명(明)나라 남경(南京)시대에 명나라 조선국사가 통과하는데,
역졸(驛卒)과 역마(驛馬) 등 시종(侍從) 또한 여객(旅客)의 숙소로 사
용한 원사(院舍=국사)가 있었다. 그러나 중국의 수도를 북경(北京)으
로 이전하므로 원사(院舍)도 폐되었다. 현재 덕산면 신평리(新坪里)다.
5. 오페르트사건
천주교도가 대원군(大院君)에게 당한 참화(慘禍)에 대해서 보복(報
復)을 염원하며 독일인 오페르트는 1868년 이태왕(李太王) 5년 5월
제3장 사적(事蹟) 1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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