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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천통신학교에서교육을받은후,논산훈련소교환대에서근무하다가제대하였는데,

남,
독신아들이고아버지의나이가많아13개월만에의가사제대하였다.




30살에결혼.


신성근님은30세에늦게결혼하였다.안면도누님사는마을에간척사업을하였고,전


라도에서일하는사람들이와서막았다.누님댁에서는일하는사람들밥을해주었고,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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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의중매로전남여천군에사는처녀를소개받았다.30세때신부집에가서,신부를데려
와원산도본가에서결혼식을올렸다.
신부는당시20세로여순반란사건으로아버지를잃었다.신부의아버지는사회주의사
상을 가지고 있었고, 광주교도소에 있다가 돌아왔고, 경찰들이 다시 잡아다가 배에 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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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사람과 함께 수장시켰다. 마을의 다른 사람들은 시신이 발견되어 장사 지냈으나 신
부의아버지는시신이발견되지않아나무로만들어장례를모셨다.당시신부는3살이었
는데어머니마저재혼하는바람에할머니밑에서자라다시집온것이었다.
어렸을때공치기를많이하였다.
옛날 점촌마을 청년들은 원산도 백사장에서 공치기를 많이 하였다. 10여 명의 청년들
이 양편으로 갈려 공치기를 했는데, 막대기는 밑이 우산대처럼 구부러진 막대였고 ‘공채’
라고 불렀다. 공은 골프공처럼 나무로 만들었다. 백사장에 금을 그리고 끝에는 돌을 놓
아 문을 만들었다. 공을 쳐서 문으로 들어가면 점수를 내는 것이었다. 문의 폭은 약 10m
정도되었다.
점촌마을에는위친계가있었다.
점촌마을에는위친계가있어부모님이돌아가셨을때함께도왔다.초상이나면마을전
체가 3일 동안 자기 일을 하지 않고 초상집을 도와주었으며, 상여를 메어 주는 등 장례를
모실때까지함께하였다.상가에는염하는데사용하라고마포2~3필을주었다.
점촌마을의상엿집은현재도남아있다.상여의부품들은대부분없어지고,장강틀도모
두썩었지만,1971년에지은블록건물은현재도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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