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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의뜻이주형세를정하지않고국가를존경지않고그화(禍)를용납함이극에달합니다.
이로부터 성권(聖眷 : 왕의 권속들)이 점점 쇠해지니 그 후로 여러번 대하여 반복으로 간절히
변론하니 왕이 마침내 가납하지 않았다. 먼저 동궁(東宮 : 세자궁) 보도(輔導 : 보필하고 인도함)의 명
으로 익위사어(翊衛司禦 : 세자를 위한 강학시위임무)로 제수 받은 것이 있어 선생이 한번 모시고 정
하며 경연에 근면하게 봉직하니 개연히 호연(浩然)히 돌아갈 뜻이 있더라 계공(아우) 계진(啓震
동생)이 홍천 현감으로 모친을 모시고 가니 임금께서 모친과 같이 감을 마침내 허락하시다
속히돌아오라고유시하시다겨울에유지를내리니선생이편결피못한것을재촉하였다.
정미년 봄에 서울에 들어가 명을 기다렸으나 미몽(迷夢 : 인결치 못하다)하니 드디어 소를 올
리고 돌아가다 기랑(騎郞 : 병조에 소속된 장관)을 시켜 나루에 (한강) 나오니 긍정원이 듣고 왕께서
돌아오라명을하시다이로부터세신(世臣)과의가나뉘어졌다.
공은 현실을 떠나 자연에 묻혀사는 사람의 처신과는 달라야 한다고 여겨 감히 곧장 나아
가지 않고 돌아와서 성 밖에서 죄를 기다리고 다음날 입대(入對)할 때 왕께서 조정신하를 징
토(懲討)함이 당습(黨習 : 당쟁하는 폐습)으로 몰아낸다 의심하고 계십니다. 선생이 이를 들어 편
키 어려운 뜻으로서 사대신(四大臣 : 이이명(李이명), 김창집(金昌集), 이건명(李建命), 조태채(趙泰采)) 충원(忠
寃 : 충실으로서 원통하게 죽은 혼) 힘써아뢰니(복권할 것을 아뢰다) 대소 신료가 죄가 없다 하는 자 적었
다. 왕이다 가납하지 않았다. 물이에 물러갈 것을 상소하고 드디어 나와 과천(果川)에서 유
숙하고 또 돌아갈 것을 상소하고 고향으로 돌아왔다. 승지 김치후(金致后)가 아뢰기를 이 사
람은 거취가 실로 세도(世道)가 흐려지느냐 융성하느냐 하는 문제와 연관이 되있습니다. 다
시 올라오게 할 것을 청하니 왕께서 잠깐 있다가 대 처분하여 신임사화 당인(黨人)들을 다시
등용하여 전후에 걸쳐 토역(討逆 : 역적을 토벌하다)하고 척파(척파 물리치다) 하라시니 선생이 소명
(召命)을 사양하는 상소에서 제신(諸臣)들이 같이 죄벌을 입은 것을 처분의 실책을 극론하니
마땅히 옥당(玉堂 : 홍문관의 별칭)에서 논척(論斥) 하라하니 선생이 중전(중전 엄한 제도)에 합치하다
왕이역신(逆臣)을따르지않았다.
이광좌의 선백(建白 : 건의)으로 경연관 피초자(被抄者 : 기록하는 사람)를 무시하고 실로 마땅히
다시기록하지않았다.왕이또한답을않했다.
무신년(1728 영조) 봄 신임(辛壬 : 사화) 역당(逆黨) 기사(己巳 기사환국)의 남은 무리와 합세하여 호
160_홍성의금석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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