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 216페이지

160페이지 본문시작



禮山의
임숙재(任淑宰)(1891.7.22∼1961.6.8)
임숙재(任淑宰)는예산군삽교읍방아리에서독실한기독교계가정에
서개화직전인1891년7월임명호(任命鎬)와김명은(金命恩)의사이
에서무남독녀로태어났다.
부친임명호는19세기중엽에예산군오가면좌방리(지금의삽교읍
방아리)의임참봉공(任參奉公)의차남이다.
임숙재는어려서부터부모님의영향을받아외모(外貌)가아주단정
(端正)하고정숙(貞淑)하였다.또한학구열이남달리강하고사리(事
理)에밝아일찍이신구학문(新舊學問)을접하면서어린시절을보냈다.
17세에집안어른들의중매로아산군신창면득산리239번지의명문
대가인속칭윤참판댁으로출가했으나,예상밖으로조선시대에의관
임숙재
(議官)을지낸윤석영(尹奭榮)의자제인남편윤돈(尹墩)이성균관에서학문을연구하다가갑
자기곽란(藿亂)으로별세함으로서결혼한지1년도못되어청상과부가되었다.임숙재는모
든슬픔을기독교의깊은신앙심으로극복하고1894년갑오경장(甲午更張)이후물밀듯이밀려
드는서구문물(西歐文物)과전통사회의붕괴에따른급격한사회변화속에서남달리신학문에
대한학구열을불살랐다.
18세에이르러늦깎이로서울명신보통학교에입학하여초등교육을받고한국여성교육의요
람(搖籃)이었던숙명여자보통학교에입학,그곳에서국어학(國語學)의대가(大家)이신주시경
(周時經)선생을비롯한당대의훌륭한선생님들의지도를받아본격적으로신학문을섭렵(涉
獵)하는한편,우리나라여성계의별들이라할수있는김활란(金活蘭),임영신(任永信),이숙종
(李淑種)여사등과교분을갖고한국의여성교육과여성의지위향상및선교사업에대해토론
하고연구하면서젊음을구가(謳歌)하고장래여성지도자로서의자질을착실하게갖추어나갔
다.
숙명여자고등보통학교를졸업한임숙재는약3년간충남공주공립보통학교에훈도(訓導)로재
직하면서남다른교육애와천직의식으로제자양성에힘써향토교육의선구자가되었다.
그런데그당시는대부분의지역주민들이무지하여교육에대한중요성을미처깨닫지못하였
기때문에무료(無料)로학교에서수업을받게해준다고해도자녀들을취학(就學)시키지않아
집집마다찾아다니며학생들을모집하여손을꼭잡고가르치지않으면안되었다.
어려운고비를수없이겪었지만그때마다제2세교육이야말로천직임을깊이깨닫고훌륭한
160

160페이지 본문끝



현재 포커스의 아래내용들은 동일한 컨텐츠를 가지고 페이지넘김 효과및 시각적 효과를 제공하는 페이지이므로 스크린리더 사용자는 여기까지만 낭독하시고 위의 페이지이동 링크를 사용하여 다음페이지로 이동하시기 바랍니다.
상단메뉴 바로가기 단축키안내 : 이전페이지는 좌측방향키, 다음페이지는 우측방향키, 첫페이지는 상단방향키, 마지막페이지는 하단방향키, 좌측확대축소는 insert키, 우측확대축소는 delete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