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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사용하여 묘사하였다. 세부 표현도 매우 뛰어나 선묘는 세밀하여 일획의 실수도 없이 정갈하며,
박락되어 흔적만 살펴볼 수 있는 복사꽃 꽃술의 금채(金 )를 제외하고는 정교하게 채색된 부분 역시
아직도 화려함과 영롱함을 잃지 않고 있다. 화면 오른쪽 아래 구석에‘지곡가도( 谷可 )’
라는 안견의
관지(款 )가 있고 이어서 주문방인(
) [가도(可 )]가 찍혀있다.
현재 몽유도원도는 상?하 2개의 두루말이로 표구되어 있는데, 상권의 첫머리에‘몽유도원도’
라는
안평대군의 제첨(
)과 몽유도원도가 완성된 지 3년 후에 지은 안평대군의 칠언절구(
句)가
주서(
)로 쓰여있으며 이 시문에 이어서 안견이 그린 몽유도원도가 펼쳐져 있다.
그림 뒤에 안평대군의 발문이 붙어있으며, 그 뒤를 이어 세종조의 대표적 인물 21명의 찬시(
실려있다. 상권에는 안평대군의 발문에 이어서 신숙주(
), 이개( 愷), 하연(
), 송처관(
寬),
김담(? ), 고득종(高
), 강석덕(姜
), 정인지(
), 박연(
)의 찬시가 있으며, 하권에는
김종서(?
), 이적(
), 최항(
), 박팽년, 윤자운(
), 이예(
), 이현로(
?), 서거정
( 居 ), 성삼문(
), 김수온(?
), 만우(
), 최수(
)의 찬시가 실려있다.
이처럼 몽유도원도 권(卷)은 시( ), 서( ), 화( ) 삼절(
)의 수준 높은 경지를 구현함과 동시에
세종조의 빼어난 문화적 역량을 한눈에 살펴볼 수 있어 조선전기를 대표하는 가장 중요한 예술작품
으로 평가받고 있다. 내용의 문학적 성격은 물론, 서예사적으로 큰 가치를 지니고 있다. 이 그림은
안견의 대표적인 작품으로, 그 후의 한국 산수화 발전에 큰 영향을 끼쳤다.
현재 충남 서산시 지곡면 화천리에는 안견의 예술혼을 후세에 기리고 문화 의식을 고취하기 위하여
1991년에 개관한 안견기념관이 있다. 1619년(광해군 11) 저술된 서산의 읍지『호산록』
에 안견 출신
지가‘서산군 지곡면’이라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서산 문화의 뿌리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자 서산시는
안견의 출신지인 지곡면에 몽유도원도를 실측 크기로 조각한 기념비를 건립했다. 안견기념관에는
안견의 작품인 몽유도원도를 실측 크기로 제작한 영인본을 전시하고 있으며, 적벽도, 사시팔경도,
소상팔경도 등 총 18점의 작품을 전시하고 있으며 향토 작가의 미술품도 같이 전시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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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_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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