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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게 읽는 고전
『청장관전서』
이덕무의
이덕무(
, 1741-1793)는 서얼이었다. 원칙적으로 과거 시험을 볼 수 없었던 그는 정조 3년
(1779년) 규장각 검서관(檢 官)으로 특채되었다. 이후 15년간 낮은 직책을 전전했지만, 이덕무에
대한 정조의 신임은 두터웠다. 정조는 이덕무가 사망한 2년 후, 이덕무의 아들 이광규를 검서관
으로 특채하고 특별히 국고(國庫)에서 내탕전(內
) 500냥을 내어 이덕무의 유고집을 간행해주
도록 지시했다.
이덕무가 이렇게 특별한 혜택을 받을 수 있었던 이유는 단 한 가지, 그가 보여준 방대하면서도
근면한 독서인 사대부로서의 선비다움 때문이었다고 할 수 있다. 사대부 선비의 삶으로서 이덕무는
동시대의 어떠한 인물과 견주어도 손색이 없다. 이덕무는 독서를 베이스로 하는 지식 교양 계급
으로서의 사대부, 라는 이름에 부끄럽지 않았던 몇 안 되는 진짜 선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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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_10
『청장관전서』
이덕무의
이덕무(
, 1741-1793)는 서얼이었다. 원칙적으로 과거 시험을 볼 수 없었던 그는 정조 3년
(1779년) 규장각 검서관(檢 官)으로 특채되었다. 이후 15년간 낮은 직책을 전전했지만, 이덕무에
대한 정조의 신임은 두터웠다. 정조는 이덕무가 사망한 2년 후, 이덕무의 아들 이광규를 검서관
으로 특채하고 특별히 국고(國庫)에서 내탕전(內
) 500냥을 내어 이덕무의 유고집을 간행해주
도록 지시했다.
이덕무가 이렇게 특별한 혜택을 받을 수 있었던 이유는 단 한 가지, 그가 보여준 방대하면서도
근면한 독서인 사대부로서의 선비다움 때문이었다고 할 수 있다. 사대부 선비의 삶으로서 이덕무는
동시대의 어떠한 인물과 견주어도 손색이 없다. 이덕무는 독서를 베이스로 하는 지식 교양 계급
으로서의 사대부, 라는 이름에 부끄럽지 않았던 몇 안 되는 진짜 선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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