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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을 읽으면서 옛날 선인들의 높은 도덕과 풍류에 감탄하고, 가슴에 새길 덕담(
)을 확인
하는 것은 고전이 지금의 나와는 거리가 먼 저기-딴세상의 일임을 자백하는 것이다. 모르긴
몰라도 고전에 익숙하지 않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고전은 아마도 이렇게 인식될 것이다. 삶의
고달픔을 위로해주는 따뜻한 아포리즘! 특히 동양 고전의 경우, 한글세대인 현대인들에겐 외국어
보다도 낯선 외계어(한자)들이 마구 등장하는 까닭에 거기에서 오늘날의 현재적 실감을 느끼기가
더욱 쉽지 않다. 단적으로 말해, 인( )이니 성( )이니 예( )니 하는 말들을 지금 자신의 삶에
견주어 개념적으로 이해하고 활용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하지만 이러한 무능력이 반드시 고전에 대한 접근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것은 아니다. 중요한 건
고전의 내용을 이해하는 게 아니다. 중요한 건 고전을 내 삶에 써먹는 일이다. 고전은 과거에 남겨진
주옥같은 말씀이 아니라, 지금-이곳에서 내 삶의 문제와 맞닥뜨리는 순간 탄생하는 특별한 화학
작용의 산물이다. 그러므로 고전은 과거의 책이 아니라 오히려 미래의 책이다. 고전의 세계는
옛날-저기 저쪽의 먼 얘기가 아니라 지금 이 순간부터 내가 응전하게 될 현재이자 앞으로의
전망을 제시한다.
고전은 쉽게 읽히는 책이 아니다. 고전은 앎과 삶이 일치하는 세계에 속해 있으며, 나로 하여금
현재와 대면하도록 강요하기 때문이다. 위대한 텍스트는 우리를 행복하게 하지 않는다. 위대한
텍스트는 우리를 괴롭힌다. 우리를 찌르고, 흔들고, 불편하게 하고, 미궁으로 몰아넣는다. 바로
이러한 고통을 통해 고전은 우리의 삶을 한층 더 단단하게 높은 세계로 성장시키는 것이다. 그러
므로 우리는 고전이 우리들의 관습과 정신을 적당히 위로하고 어루만져주는 행위가 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고전은 어느 순간 느닷없이 정수리를 갈기고 달아나는 도끼가 되어야 한다.
고전을 통해 발견하는 새로운 삶의 동력은 적당히 현실에 안주하려는 우리들을 불편하게 하고
그 권리를 빼앗아가는 어떤 폭력들에 있다.
이런 까닭에 고전의 세계로 통하는 문 앞에서 중요한 건 스스로 마음을 내는 일이다. 그 마음
이란 두 가지면 충분하다. 누구에게라도 배우겠다는 낮은 마음[하심(
)]과 언제라도 배우겠다는
꾸준한 마음[항심(
)]! 김홍도가 그린 서당 풍경을 떠올려보자. 거기에서 가르치는 이와 배우는
이들의 관계는 서로가 서로에 대해 마주보는 자리에 놓여 있다. 이 관계는 스승과 제자뿐만
아니라 제자들 사이에서도 동일하다. 제자들은 서로 마주보고 같은 위치에서 묻고 배운다. 배움
이란 근본적으로 자기와 자기 주변의 관계들에 대해 스스로 열려 있는 배치 속에서 이루어진다는
의미가 아니었을까. 배움터의 이러한 풍경은 교단과 교탁, 스승 외엔 동료의 뒷통수만 쳐다보게
되어있는 오늘날의 교실과 비교해볼 때 많은 것을 시사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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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eosan.cult21.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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