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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허균
許均
<1913. 4. 14 ~ 1992. 7. 20>
아산 출신의 기업인이다. 염치읍 산양리에서 출생했다. 본관은 양천(陽川)이며 호는 석암(昔巖)이다.
1929년 3월에 아산공립보통학교(현 영인초등학교)를 16회로 졸업했다. 1940년대에 서울 뚝섬에서 재생
펄프 사업을 시작한 뒤 고서(古書) 영인본을 인쇄하기에 좋은 고급 원지를 생산하게 되었다. 해방 후에는
서울 필동에 제지 기계를 설치해서 사업을 계속하다가 6.25전쟁이 일어나자 부산으로 피난했다. 부산 피
난 시절에 국방부 정훈국으로부터 일본인이 경영하던 부산제지 부전공장을 지정받아 운영했으며 1952년
에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크라프트지(하롱지)를 개발해서 생산하기 시작했다. 1953년에 서울로 올라가서
필동(뒤에 영등포로 이전)에서 신흥제지를 설립하고 후엽지, 골판지, 크라프트지 등을 생산하기 시작했다.
그 후 제지업계에서 큰 역할을 담당하면서 한국 골판지협회 초대 회장을 역임했다.
그는 지역사회 발전을 위해서도 관심을 갖고 기여했다. 공세리에 있던 면사무소를 밀두리로 이전하도록
인주면 도흥리에 있던 땅을 팔아 희사했고 영인중학교 개교 당시 교실 유리창을 기부하기도 했다. 천도공
민학교를 천도고등공민학교로 승격시키도록 하는 등 그밖에도 여러 가지 일을 많이 했으며 자서전 <공손
수(公孫樹)>를 남겼다. 묘는 염치읍 산양리 종중 묘역에 있다.
<허균의 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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