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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불고(德不孤 : 덕 있는 자는 외롭지 않다는 말 논어에서 나옴) 같은 나의 도를 할 사람을 얻었으니 심
히 기뻐하였다. 이에 김농암(金農巖 김창협) 중화선생을 가 뵙고 반나절 동안 학문을 강론하니
농암이 이르기를 군은 총명이 부족함이 없고 근심도 없으니 나만 너무 일찍이 얻었다. 갑
오(1714 숙종)년과 정년(丁年)에 근수공(한원진의 아버지)의 상을 당하였다. 정유년(1717 숙종)에 이르
러 임금께서 온궁(溫宮)에 행차하시어 도신(道臣 : 관찰사)에게 학행(學行 : 학문과 덕행이 있는 것, 그런 선
비)있는 선비를 천거하라 명하시니 선생(남당 선생)이 천거되어 영능(효종과 비 인성왕후 영주능 서면에
있음) 참봉에제수하니무술년(1714숙종)에모친의병환으로벼슬을내놓았다.
신축(1721 경종)에 어사 조문명이 또 선생을 천거하니 학문과 재주가 통달하여 마땅히 뽑
아 가리었다. 금상(今上 : 그 당시 현 임금)이 새로 저위(儲位 : 와세자 지위)를 책립(冊立)하니 선생이 드
디어 익위사 부교(翊衛司 : 세자 익위사)를 제수하시니 창의동 산저에 나아가 받들어 동궁에 들
어가 시강서연(侍講書筵 : 조선조때 세자 시간원, 종사품)으로 여러번 자문(顧問)을 하더니 얼마 안있어
때의 일이 갑자기 변하여 역신(逆臣) 조태구가 아뢰기를 향외(鄕外 : 시골촌)의 외잡(猥雜 : 음탕하고
난잡함)한 사람이라 선생을 가르켜 진실로 궁료(宮僚 : 궁의 官원)로서 채워둘 수 없다하니 선생
이드디어벼슬을버리고돌아갔다.
임인년(1722 경종) 봄에 흉당(凶黨 : 역적의 흉한 무리) 내회에 결연되고 결속 되어 화색이 급박한
위기의 임을 들으니 세필(世筆 : 황세자)가 합사위(閤辭位 : 편전의 문바깥에인듯함)로 나아가 놀래고
통탄함을 이기지 못하였다. 궁함(宮啣 : 세제 시강원)이 됨으로부터 몸이 의(義)로서 퇴보치 못하
더니 즉일에 거동하니 요비역환(妖婢逆宦 : 역적의 무리)이다. 베어 지었다. 세자는 편안함을 얻
고 드디어 환향(낙향, 고향에 돌아보다)하니 금상(今上 : 그 당시 현임금) 원년 을사(1725년 영조) 겨울에 영
부사 민공 진원(鎭遠)이 말하데 종부시(종부시 종친부) 주부로 승제하니(陞除 : 장명 성진령)이 현인을
천거하여 능치 못하니 먼저 상소한 병조판서를 물리치고 경연관 초선(抄選 : 이조 당상이 모여서
특별히 어떤 벼슬에 마땅한 사람을 뽑는 일)을 경연관(經筵官 : 임금 앞에 경서를 강료하는 관원)을 뽑기를 청하니
보익(補益 : 보충으로 늘림)자격으로 선생에게 주어졌다. 병오(1726 영조) 민공 이 강관(경서를 강논하는
관원) 황재를 경질을 함에 재차 불러옴을 청하고 별도로 유시하였다. 상소도 윤허치 않았다.
팔월에 부름을 받고 서울에 가서 벼슬을 파할 것을 상소하니 임금께서 예우로 인견함을 명
하며 융중히 하니 배운바를 다 펴기를 유시하니 선생이 아뢰기를 제왕 치세의 도는 그 근
158_홍성의금석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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