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 216페이지

158페이지 본문시작



禮山의
장문환(張文煥)(1887~1947)
장문환은 1886년 고덕면 인한수와 같
이고덕면상궁리에서태어났다.
그는 중농(中農)의 가정에서 태어나
문중에서 천자문(千字文)을 떼고 당시
학문의고장인면천(沔川)도호의숙(挑
湖義塾)에서 1908년 22세까지 수학하
였다. 이 의숙은 충장공 남이홍 장군의
대전현충원에 안장된 장문환의 묘
기념비
후예인 남석구(南錫龜 1820∼1860)가
세운의숙이다.장문환은학문은물론무예에도조예가깊었으며귀향하여양촌서당(陽村書
堂)을 개설하여 자기사상을 펼쳤다. 이때 그는 양촌(상궁리) 이장을 겸하며 구장인 인한수
와의기가상통하여훗날한내장터만세운동을이끌었다.
1919년 4월 3일 장문환은 예산군 고덕면 장날에 대천(大川)장터에 모인 1000여명의 군중
과 함께 독립만세를 고창하며 장터를 누비고 다니면서 시위를 전개하다가 시위자 7명이 일
경에게검거되자시위군중과함께주재소에서만세시위를주도했다.
이어 일본헌병의 무차별 발포로 시위자 한명이 순국하자 격분한 나머지 시위군중 15명과
함께시체를헌병주재소로운반하여놓고“왜백성을죽였는가?이사람을살려내라”고항변
하였으나적헌병오장(伍長)인주재소장이주재소밖으로쫓아내려하자붙잡아구타하다
가피체되었다.
이해5월26일공주지방법원에서소위소요로징역1년6월형을언도받아옥고를치렀다.
정부에서는고인의공훈을기리어1992년건국훈장애족장을추서하였다.
158

158페이지 본문끝



현재 포커스의 아래내용들은 동일한 컨텐츠를 가지고 페이지넘김 효과및 시각적 효과를 제공하는 페이지이므로 스크린리더 사용자는 여기까지만 낭독하시고 위의 페이지이동 링크를 사용하여 다음페이지로 이동하시기 바랍니다.
상단메뉴 바로가기 단축키안내 : 이전페이지는 좌측방향키, 다음페이지는 우측방향키, 첫페이지는 상단방향키, 마지막페이지는 하단방향키, 좌측확대축소는 insert키, 우측확대축소는 delete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