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 197페이지

156페이지 본문시작

【 】
7
이름 높고 소중한 명승고적들
1.
명승
산천
? ①
설화산
이 산은 온양 온천에서 동으로
10
리 상거해 보이는 산인데 산정에는 백제의 성지가 완연히
있고 그 동북으로는 배방산이 솟아 있는데 역시 백제의 성지가 있으니 백제 당시 온양을 방
비함에 있어서 그 중요 역할을 한 듯하다 북에 곡교천이 흐르고 그 좌우평야에는 전답이 개
척되어 주민의 식량을 제공한다 이 산은 기이하게 솟아오른 모습에 맑고 빼어난 산세로 이곳
의 영산으로 유명하다 이 산을 중심으로 동쪽으로는 쇠일 금곡 의 맹씨가 서쪽으로는 외암이
씨가 세거하고 있다.
? ②
곡교천
온양읍 주변에는 이렇다 할 만한 내나 강은 없지만 온양 온천의 북쪽으로 감돌아 흐르는 곡
교천이 있는데 명승지라기 보다 수량이 풍부하여 농업용수로 많이 활용하고 있다.
온천
온양 온천에 대한 기록은 동국여지승람 권
19
에 의하면 백제시대부터 이미 알려져 있었다
고 한다 그러기에 고을 이름을 줄곧 탕정 온수 온창 온천 등 온천임을 나타내는 이름으로만
불리어 온 것으로 본다 옛 온양군은 원래 백제의 탕정군이었는데 고려 초에 이르러 이름을
온수군으로 고쳤다 조선 때에는 태종
14
년에 온창
, 16
년에 온수로 고쳐 불리어오다가 세종
14 (1432 )
년 에 임금이 온천에 거동하여 지금의 이름으로 고쳤다 옛 기록에 온천은 좌군서
칠리허에 있는데 병을 고치는데 효험이 있다 조선의 세종 그리고 세조가 일찍이 순행하여 유
욕했다 그 때 머무른 어실이 있다 고 밝히고 있다 두 임금 외에도 숙종 영조 정조 등 많은
임금이 자주 유욕하였다 그 유적으로는 세조 때에 이 온천 옆에서 냉천이 발견되어 당시 상
서의 발로이다 하여 팔도에서 하표를 받은 일이 있는데 그 기록을 담은 주역신정비와 영조 35
(1760 )
년 에 왕이 온궁에 왔을 때에 왕세자 사도세자 가 행계하여 무술을 연마하던 사장을
기념하기 위해 왕이 군수 윤염에게 명하여 사대에
3
데 이곳에 정조
19 (1795 )
년 에 세운 어제영괴대비 등이 아직도 남아있다 어실로 쓰이던 온
궁은 원래 신정관 현 관광호텔온양 터에 있었으나
, 1904
년 일본의 경제침탈에 의하여 철거되
었다고 한다 현종의 온천 임행에 관련된 다음의
가 전해진다
? “
온천이 중흥하니 온천을 생각하고 행전의 감회는 옛 생각이 깊었구려 옛날의 누대 임금
모두 다 오시어서 이곳에서 주무시니 얼마나 다행한다 옛날 일이 더욱 마음에 새롭다 대나무
로 병풍 침은 옛부터 전하는데 이제 와서 다시 보니 옛 생각 새롭구려 근본 가지는 오히려
온전속에 머무는데 그 때 일 생각하니 눈물이 앞서는구나.”
? “
행재소의 문 앞에 선 작은 비석은 지난 날 행임하던 때의 추억만 새로워라 이제 옛일 생
각하여 영각을 명하오니 이 사실은 어제 시에도 자세합니다.

156페이지 본문끝



현재 포커스의 아래내용들은 동일한 컨텐츠를 가지고 페이지넘김 효과및 시각적 효과를 제공하는 페이지이므로 스크린리더 사용자는 여기까지만 낭독하시고 위의 페이지이동 링크를 사용하여 다음페이지로 이동하시기 바랍니다.
상단메뉴 바로가기 단축키안내 : 이전페이지는 좌측방향키, 다음페이지는 우측방향키, 첫페이지는 상단방향키, 마지막페이지는 하단방향키, 좌측확대축소는 insert키, 우측확대축소는 delete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