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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2?서산천수만의옛모습
개척단의모월리정착과개간
모월리 3통에 개척단의 생활 근거지가 꾸려졌다. 이곳은 개간지 옆의 산이었
다. 주민들의 거주지와는 거리가 조금 떨어져 있는 곳에 공동의 생활근거지를
꾸렸다.초기에는집이없어천막을치고생활했다.
개척단에게는 임야 15,011평을 개척하는 임무가 주어졌다. 이 지역은 모월리
산 33-1번지로 묶여 있었다. 이곳은 이미 둑이 막혀 있었기에 개간만을 하면
되었다. 개간지는 320정보로 국유지였다. 이들에게 농지를 분배한 방식은 제비
뽑기였다. 정착 시기에 따라 1기, 2기, 3기의 기수대로 제비뽑기로‘가분배’를
했다.
이들은 국가에서 지급해주는 강냉이 가루와 밀가루를 먹어가며 농지개간에
동원되었다. 아침에 대한통운 트럭에 가득 실려 밀가루와 강냉이가루가 왔지만
자고 나면 그것이 모두 없어졌다. 그것이 어디로 갔는지는 알 수 없었고 단원들
에게 지급되는 양은 턱없이 적었다. 비료가 없어 소출량은 기대할 수 없었다.
보리만을조금씩심어서수확해먹었다.
개척단원은 군대와 같이 소대, 중대, 대대, 연대로 구분되어 관리되었다. 외
부와 차단된 감금상태에서 생활했다. 이에 도망가는 사람은 맞아 죽었거나 사
살되곤했다고전한다.
아침 5시 30분에 기상해 6시에 대문 밖에 모여서 행진을 해서 운동장에서 점
오했다. 운동장 10바퀴를 돌고는 공동취사장에서 아침식사를 하고 곧 작업을
시작했다. 이들의 작업은 개간지의 울퉁불퉁한 땅을 고르는 작업이었다. 작업
장으로 갈 때나 돌아올 때는 행렬을 지어 이동했다. 하루에 4루배씩 작업했는
데, 사방 1미터가 1루배이고, 사방 2미터가 4루배이다. 삽과 손수레만을 가지고
여럿이협업으로진행했다.
파인 땅에는 돌을 지어다가 메워야 했기에 앞쪽의 높은 산에서 등짐으로 옮
겼다. 지게도 없어 짚으로 새끼를 꼬아서 멜빵을 만들어 짊어지고 다녔다. 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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