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禮山의
김지태(金智泰)(1879~1949)
오가면 원평2리 597번지는 동학혁명을 주도했던 김지태 선생이
정착하여민족의진로를모색하고교육과동학사상을계승실천했
던곳이다.
가난과기근으로고통받는백성을이해하고자신의재산을풀어
구제하는데 아끼지 않았던 이시대의 참다운 ‘노블리스 오블리제’
를실천한인물이다.
김지태 선생은 호가 정암으로 태안 근흥면 정죽리 동학접주였던
김종희의장남으로태어났다.1984년10월1일태안관아점령부터
홍주성전투까지 참여했다가 패퇴과정에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아
김지태의혜휼기념비(오가면역탑리)
태안변두리에살고있던딸의집에피신하다오가원평리597번지
로몰래정착하여천변땅을일궈생계를꾸려나갔다.
이곳에서국사당보를관리하고겨울엔물방앗간을운영하여정착몇년만에중농으로부상
했다.김종희는집아래채를천도교교당으로사용하여흩어진많은교도들을모이게했다.
이는동학혁명이후내포지역최초의동학교당으로보여진다.
또대술면방산리최씨선생을모셔다가글방을차려아동을가르쳤다.
김종희는태안에있는사위(이기봉의부친)도원평리로이사시켜생계를꾸려갈수있도록
마련해주었다.
시천교 교주 구암 김연국은 김종희의 사위이다. 이기봉(101세)옹의 증언에 의하면 구암장
은천도교와시천교간의분리후에도자주원평리에왔다고한다.
김지태는1920년대광시서초정리동학교도박승호형제가가져온 금광석을보고서초정
리와공주유구검단에금광사업을대대적으로펼쳐예산의8대부자안에들정도로큰부자
가 되었다. 1935년에 건립되어 현재 오가초등학교 진입로 입구에 있는 김지태 혜휼기념비
(金公智泰惠恤紀念碑)가말해주듯김지태는많은재산을어려운사람들을위해나누어주
고베풀줄아는위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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