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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수만의간척과개척 ?151
를높였다.단가에는그들의생활과이념이녹아있기에소개하면아래와같다.
우리는무적의젊은개척자
올바른정신과올바른마음으로
민족의번영과자활을위해
오늘도일터로우렁찬행진
내일의번영을어깨에메고
우리는불굴의개척의용사
이러한 단가를 부르며 노동현장에서 작업을 했다. 당시 전체 인원의 8%가 임
원이었고, 단원 중 소대장을 뽑아 단원을 관리했다. 부랑아 생활을 하던 이들이
었기에 싸움이 잦았다. 서로 치고 박고 싸우다가 일부는 죽기도 했고, 도망가다
가 붙잡혀 맞아 죽기도 했다. 그들은 마을로 들어오는 공동묘지에 매장했다. 인
근 마을 주민들은 아침마다 당가에 죽은 사람을 실어 마을 입구의 공원묘지로
옮겼다고 기억한다. 이후 공원묘지 자리에 희망공원이 만들어지면서 당시 사망
했던 이들을 한 켠에 매장하고‘서산청소년 개척단’이라는 표지석을 세웠다.
1990년도까지 해마다 추석에는 그들을 위해 위령제를 지내주었다. 1990년대까
지는 50여 명이 거주했기에 위령제를 지내는 공동제사는 유지될 수 있었다. 개
42)
척단원들이노령화되고,단원도16명만이남았기에위령제는중단되었다.
42) 한때이지만 이들이 지역을 활보하고 다녔기에 부석면과 인지면 주민들은 두려움에 떨었다. 먹고 살 것
을 주지 않았기에 주변 마을을 돌며 고추장단지, 된장단지 등을 가져갔다. 동일한 옷을 입고 머리도 짧
게 깎고, 그들이 다녀가면 물건이 없어지기도 했기에 현재 60대 중반의 주민들에게 개척단하면 무서운
사람들이라는 어린 시절의 기억이 있기도 하다. 지역 주민들은 먹을 것이 없던 개척단이 먹고살기 위해
어쩔 수 없었던 상황이었다고 이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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