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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령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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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소실되었다.
현재의샘은옛샘그대로이고토지는강인길씨의조카들이소유하고있다.
이미골에는일제강점기말광천담산리에서이주한주민이최초로들어왔고이후
가옥이늘어나10여호가되었다가,1975년경정부정책으로모두이주하였다
원산도리 이미골에는 주민들이 거주하지 않다가 일제강점기 말 광천 담사리에 살던 이형
용(李亨容, 1914)이 최초로 들어왔다. 이형용은 한학자였고, 일제를 피해 원산도 오지로 들어
와토굴을만들어생활하였다.이후섬주민들에게한문을가르치고한약을지어팔아생활
하였다.
이형용 이후 이미골에는 주민들이 늘어나 10여 호까지 되었다가, 1975년경 정부의 독가
촌 이주정책으로 풋살 마을로 이주하였다. 강인길 씨도 이미골에 2번째로 들어가 살다가
1975년풋살마을로이주하였다.
9살때어머니가돌아가셨다
강인길 씨가 9살 되던 1953년,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이때 4명의 동생이 있었고, 막내는
고작 생후 21일이었다. 어머니는 낮에 쓰러져 코를 골고 있었고 이웃에 사는 이형용 선생이
얼굴에체를덮고식초를머금어품었으나깨어나지못하고저녁에돌아가셨다.21일된동
생은 큰어머니가 데려다 키웠으나 3살 때 사망하였다. 이후 새어머니가 들어와 의붓자식들
을 정성으로 길러주었다. 강인길 씨는 가정형편과 동생들 때문에 학교에 다닐 수 없었고 아
버지한테 천자문과 계몽편을 배웠다. 형제 중에는 막내 동생만 겨우 초등학교를 졸업하
였다.
이형용선생은이미골에서학생들을가르치고한약을취급하였다
이형용(李亨容, 1914) 선생은 이미골에 최초로 들어와 처음에는 토굴에서 생활하다가 이미
골에서 가장 크고 좋은 집을 지어 생활하였다. 학생들을 15명 정도 가르치고, 한약을 취급
하여 주민들의 출입이 많았다. 각종 약재를 재배하였고 자기 집 마당에다 화사리에서 후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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