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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설이타령●●●
각설이타령은 예산의 대표적인 향토소리 중 하나다. 예산지역
의 각설이타령은 조사자 이걸재에게는 우리민속과의 인연에서 매우 중요한 소리다.
어려서부터 문학인이 되고자했던 조사자는 예산의 각설이타령으로 인해 우리 민속의
우수성을 절감하게 되었고, 1990년대에는 소설가 활동을 접고 우리민속의 채록?조사
자로 인생의 진로를 바꾸게 하는 매우 충격적인 감동을 준 노래인 까닭이다.
17세에 문학의 꿈을 품은 조사자는 1970년대 말경 소설의 소재를 찾아 많은 채록
을 다녔다. 그런데 예산에서 한동안 거주 했던 조사자의 백부(이황룡)가 조사 과정에서
민요들을 정리하는 조사자를 보고 예산의 각설이타령이 유명하다고 알려 주었지만,
당시에는 소설 소재를 더 중시했기에 각설이타령에는 큰 관심이 없었다.
1979년에서야 처음 예산 각설이타령을 조사하기 위해 김모씨를 찾아가 만났다. 김
모씨는 온갖 이유를 대면서 채록을 기피하였고, 각설이타령 한 소절을 채록하는데 그
쳤다. 더 부르는 것은 끝내 거절하였다. 이후 1985년 10월 경 예산에 찾아가 각설이
타령 가창을 거부하던 김모씨를 만나 어렵게 채록을 시작하였다. 이도 세 번 거듭 찾
아 갔을 때야 채록에 응했고, 자기 신분을 밝히지 않는다는 조건을 달았다. 당시 김모
씨는 자신의 소리가 채록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그의 자녀들이 학교에 가면 각설
이타령을 부르는 아버지를 ‘거지대장’이라 놀린다하여 다시는 그 노래를 하지 않기로
했다는 것이다. 그 후 1987년까지 5회 김모씨를 만나 각설이타령을 기록하고 정리하
였으며, 노랫말이 조사자에게 여러 감동을 주어 주변인에게 녹음기를 빌려 녹음을 하
여 정리 하였다.
이 조사 과정을 소상히 밝히는 것은 다음의 이유에서 이다. 첫째, 각설이타령의 원
산지는 예산과 공주라는 것이다. 이는 1975년 당시 문화공보부 문화재 관리국에서 발
행한 한국민속종합보고서 충청남도편 에 기록하고 있는 사항이다. 한국민속종합보
고서 에서는 각설이타령의 원산지를 밝히는 것뿐 아니라 노래의 다양성으로 여러 유
형의 각설이타령의 노랫말들이 보고되었고, 소리를 하는 정서가 자유로우며 여러 장
단을 활용하고 있음을 밝힌다.
2장 예산의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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