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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5] 회덕황씨 황도간
| 黃道幹
<1763년(영조39년)~1833년(순조33년)>
조선 후기의 인물로 회덕황씨(懷德黃氏) 17세이며 신창파(新昌派) 인주면 공세리 입향조이다. 현재
신창면 신곡리에 거주하는 23세(世) 황수갑(黃修甲, 84세)씨의 6대조이다.
고조는 진안현감을 지낸 황염(黃
)이고 증조는 양천현령을 역임한 황이장(黃以章)이며 조부는 황
만선(黃萬銑)이다. 아버지는 황시빈(黃時 )이며 어머니는 청송심씨(靑松沈氏)로 심종(沈鍾)의 딸이다.
황도간의 자는 직향(直鄕)이며 부인은 평강채씨(平康蔡氏) 통덕랑 채현곤(蔡顯坤)의 딸과 양주조씨
(楊州趙氏) 조완경(趙完慶)의 딸이다.
그가 언제 왜 인주 공세리로 들어왔는지는 확인되지 않는다. 또한 그의 묘가 연기 전의의 선산에 있
어서 그의 아들 대에 들어왔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의 후배인 양주조씨의 묘가 영인면 성내리에 있
고 그의 두 아들이 모두 아산시 지역에 자리 잡고 묘도 아산시 지역에 있는 것으로 보아 그가 처음 들
어왔고 묘는 선대의 묘가 있는 전의에 모신 것으로 본다.
그는 기현(耆顯)과 구현(龜顯) 등 2남1녀를 두었다. 큰아들 황기현(1796~1862)은 공세리 지역에 계
속 거주하였고, 외아들 황재성(黃在星)과 외손자 황일호(黃一鎬)로 이어지다가 황일호가 3남1녀를 두
면서 후손이 좀 생기게 되었고 묘는 3대가 모두 인주면 냉정리에 있다. 이후 후손 중 일부가 곡교천
남쪽의 신창면 신곡리로 이주하면서‘신창파’
로 칭하게 되었으며 음봉 지역의 집안들도 모두 신창파
에 포함된다.
그의 둘째아들 황구현(1808~1886)은 음봉면 신휴리 부엉골에 자리 잡았고 재정(在鼎), 재휘(在徽),
재헌(在憲), 재광(在光) 등 4남을 두면서 후손이 많이 늘게 되었다. 이들은 묘가 모두 음봉 신휴리에
있다.
14세(世)에서 갈라진 같은 집안의 18세(世) 황종현(黃鍾顯)이 탕정면 갈산2리 여술 마을에 자리 잡았
다. 황종현은 부인 신창맹씨 사이에 황재순(黃在舜)을 낳고 황재순이 준호(俊鎬), 진호(進鎬) 등 2남1
녀를 두었다. 황준호가 3남1녀, 황진호가 1남을 두며 후손이‘갈산파’
를 칭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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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산입향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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