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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서는 성벽 중간 중간에 성돌로 보이는 큼직큼직한 돌들이 박혀있는 것이 눈에 뛴다 이
로써 미루어 볼 때 어쩌면 성벽은 일정구간은 성축을 하고 다시 흙으로 복토한 것인지도 모르
겠다 서벽의 일부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발견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표조사 만으로는
이것을 단정 지을 수 없고 앞으로 보다 면밀한 조사를 기대할 뿐이다.
성벽이 얕으막한 구릉을 에워싸면서 축조되어 있는 까닭에 성내에는 곳곳에 넓은 태지가 마
련되어 있다 성내의 지형이 완만한 경사를 이룬 북고 남저형의 구릉인데다가 최근에는 성내
전체를 과수원으로 경작하느라 지형을 변경 시켜서 그런지 성내 전체가 건물지로 여겨질 만큼
도처에서 넓은 태지가 눈에 띈다 특히 현재 민가가 자리잡고 있는 남벽 근처에서 북쪽으로
구릉을 중간쯤 오르다 보면 지름
10m
정도의 반원형 저수지가 나오는데 이 부근에 있는 계단
상의 밭들이 건물지가 아닌가 추정된다 서벽 근처의 밭 뚝에서는 실제로
50 ×80
크기의
초석을 발견할 수 있었다 밭을 경작하기 위해서 밭둑에다 옮겨다 놓은 것으로 보이는데 마을
주민들의 말로는 이것 이외에는 초석으로 추정되는 많은 돌들이 민가의 마당 등지에 옮겨져
있다고 한다 이로써 보면 성내에는 꽤 많은 건물들이 있었던 것이 아닌가 한다 유물 또한 성
내 도처에서 발견된다 발견되는 유물은 와편과 도기편으로 나누어 볼 수 있는데 특히와편이
많았다 와편으로는 숫기와와 암기와를 수습할 수 있었다
수기와
1
습한 것으로 원래는 언강이 붙어 있었던 듯하나 현재는 떨어져 나가고 흔적만 남아 있다 길
20
두께
2.2
에 현 지름
12.2
인데 표면에는 횡으로 어골문이 시문되어 있다 암기와는
여기저기서 수습할 수 있었는데 특히 초석이 발견 되었던 서벽 근처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었
다 여러 점이 수습된 만큼 시문된 문양의 종류도 여러 가지 였다 대체로 두께
2㎝
의 회청색
경질 와편이었는데 무문 어골문 사격문등 시문 방법이 다양하였다 그중 하나는 다른 것과는
달리 특히 고운 태토에 붉은색 나는 경질 와편이었는데 배면에 시문한 무늬 또한 다른 것들과
는 달리 원문과 사각문의 문양을 시문하였다 즉 이 와편은 배면의 맨 위쪽에다 사각문을 교
대로 한 줄씩 시문한듯한데 원문은 지름
4-5
되는 큰원 원에다 다시 지름
1
의 작은 원을
그리고 그 작은원 위에다 절표시를 덧그려 완성하였고 사각문은
4 ×3.5
크기의 사
형 안에다 사각형의 각 변을 한 변으로 하는 삼각형을
4
표시를 한 것처럼 하였다 토기편은 회청색 경질 토기로 저부만이
2
맨 밑에 격자문늬 시문되어 있다 대형 옹편으로 추정된다
주민의 마음
? 1.
구온양은 옛날 성터읍내 답지 않게 발전이 아주 없을 때 장항선 직선화 사업으로 온양
역사를 새로 만들어 구온양이 아니라 신온양으로 탈바꿈했으면 한다.
? 2.
온양시내 근동의 식수원인 상수원 보호구역임으로 발전이 더욱 느리기에 보호 구역으로
지정하되 식수원에 저해가 되지 않는 시설은 완화 하여 구온양 발전에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 3.
아산시의 지명을 온양으로 변경할 것을 원한다 왜
온양 향교가 있는 곳에 아산의 이름
이 어울리지 않으며 아산 명칭은 아산 향교가 있는 데서 필요한 것처럼 느껴진다면서 더욱이
아산은 청일전쟁때 일본인이 승전기념으로 붙인 이름이므로 온양지명을 원한다는 의견이 주를
이루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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