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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액막이로 모여서 술을 마시는데, 이를 유두연(
)이라 한다. 조선의 풍속도 신라
이래의 옛풍속으로 말미암아 유두를 속절로 삼게 되었다."라는 기록이 보인다. 이러한 문헌의
기록들을 통하여 유두는 최소한 신라시대부터, 또는 그 훨씬 이전부터 전해 내려온 우리의 풍속임을
짐작할 수 있다. 한편, 최남선의
《조선상식(
풍속 편에는 여인들의 물맞이 장소로, 서울
에서는 정릉 계곡, 광주에서는 무등산의 물통폭포, 제주도에서는 한라산의 성판봉(
)폭포
등을 적합한 곳으로 기록하고 있다. 또 이승만의
《풍류세시기(
記)》
에는 정릉계곡 외에도
송림(
)과 물이 좋은 악박골과 사직단이 있는 황학터(
:활터) 근방과 낙산 밑 등이 서울의
물맞이 장소로 좋은 곳이라고 하였다.
유두날의 가장 대표적인 풍속으로는 유두천신(
)을 들 수 있다. 유두 무렵에는 새로운
과일이 나기 시작하는 때인데, 유두천신이란 이날 아침 각 가정에서 유두면?상화병?연병?수단
?건단, 그리고 피?조?벼?콩 등 여러 가지 곡식을 참외나 오이, 수박 등과 함께 사당[家 ]에
올리고 고사를 지내는 것을 말한다. 이때 사당에 올리는 벼?콩?조 등을 유두벼?유두콩?유두
조라고 한다. 또한 농촌에서는 밀가루로 떡을 만들고 참외나 기다란 생선 등으로 음식을 장만하여
논의 물꼬 와 밭 가운데에 차려놓고 농신에게 풍년을 기원하는 고사를 지낸다. 그 다음에는 자기
소유의 논?밭 하나하나마다에 음식물을 묻음으로써 제를 마치게 된다.
《동국세시기( 國
記)》
6월 월내조( 內 )에는 피?기장?벼를 종묘에 천신한다고 하였으며,
《예기( 記)》
월령(
)에는
중하(
)의 달에 농촌에서 기장을 진상하면 천자가 맛을 보고 먼저 종묘에 올리는데, 이는 우리
나라에서도 마찬가지라고 하였다.
유두는 조상신이나 농신만을 위한 날은 아니었다. 이 날 유두천신을 마친 후 일가 친지들이 맑은
시내나 산간 폭포에 가서 머리를 감고 몸을 씻은 후, 가지고 간 햇과일과 여러 가지 음식을 먹으며
하루를 보낸다. 이것을 유두잔치라고 하는데, 이렇게 하면 여름철의 질병과 더위를 물리치는
액막이의 기능이 있는 것으로 믿고 있다. 또 문사(
)들은 술과 고기, 음식을 장만하여 녹음이
짙은 계곡이나 정자에 가서 시가를 읊으며 하루를 즐기기도 하였다. 유두 무렵이면 농가에서는
모내기를 끝내고 김매기를 할 때이다. 아울러 가을보리를 비롯한 팥?콩?조 등을 파종하며, 또
오이?호박?감자?참외?수박 등 여름 작물을 수확하기도 한다. 그래서 비교적 한가한 시기
인 이 무렵에 유두라는 속절을 두어 조상과 농신에 대한 감사와 풍년의 기원을 행하고자 한 것이
바로 유두의 풍습이라 할 수 있다. 또한 농사일로 바빴던 고단한 일상에서 벗어나 모처럼의 여유를
가짐으로써, 닥쳐 올 본격적인 더위를 이겨내고자 한 지혜의 결과이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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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_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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