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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령시보령의바다
당굴을 거쳐 대천장을 보았다. 상당한 높이로 올라가야 통행할 수 있어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었다. 걸어 다닐 뿐 리어카도 다닐 수 없었다. 1970년경, 공병대가 신작로를 뜷었다. 군
사도로로 만들었기 때문에 공병대의 도움을 받은 것이다. 사당굴에서 국수봉 뒤를 지나 한
여와 여수해로 통하는 길이었다. 이 길을 통하여 한여까지 버스가 들어왔고, 여수해에도 트
럭이들어올수있었다.신작로가만들어진후바로전기가들어와여타농촌지역보다몇년
일찍전기가들어왔다.
여수해주민들이먹던샘은아랫말서쪽에있는큰샘이다.큰샘은두레박으로떠먹는샘
인데, 물이 좋고 많이 나와 충분하게 사용하였다. 김양식을 할 때도 그 많은 김을 다 씻을
정도로물이많이나왔다.앞서말했듯큰샘은당샘이기도하였다.
여수해주민들은여름밤에장벌에나가놀았다.여수해장벌은잔자갈로되어있었는데,
침식을 받지 않아 모난 상태이지만, 늘 파도에 씻겨 깨끗했다. 여름밤이면 이곳에 나와 이
야기도하고, 술도 마시며 놀았다. 마을에 술집이 늘 1~2개는 있어 술을 마시기도 하였다.
여수해 마을의 청년들은 중선배를 기다렸다. 중선배에는 쌀도 있고, 선원들이 먹는 좋은 생
선도있어그것을먹으면서놀았다.조금때는늘중선을기다렸다.
보령화력발전소 부지로 수용된 여수해 주민들의 절반쯤은 당진군 송학면으로 이주하였
다. 주민들 스스로 답사하여 가장 좋은 곳을 찾아간 곳이 당진군 송학면이었다. 이곳은 여
수해에서처럼 바다를 터전으로 생활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바다를 활용하는 기술이 당진보
다앞선곳이었다.이주한후통발어업을열심히하여모두성공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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