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 152페이지

149페이지 본문시작

[154] 남양홍씨 홍익현
| 洪益賢
<1537년(중종32년)~1613년(광해군5년)>
조선 중기의 은일·학자이며 남양홍씨(南陽洪氏) 20세로 당홍(唐洪)계 아산시 염치읍 송곡리 입향
조이며 송재공파(松齋公派) 파조이다. 현재 염치읍 백암리에 거주하고 있는 후손 34세(世) 홍덕표(洪
德杓, 81세)씨의 14대조이다.
가정대부 한성부윤 홍심(洪深, 1398∼1456)의 현손이고 동지중추부사에 오른 홍흥(洪興,
1424~1501)의 증손이며, 진사시를 거쳐 사섬시정에 오르고「기묘록속집」
에 이름이 전하는 홍사부
(士俯)의 손자이다. 아버지는 돈녕첨정을 지낸 홍정(洪靜, 1505~1583)이며 어머니는 장수황씨(長水
黃氏)로 봉사 황헌(黃憲)의 딸이다.
홍익현은 6남2녀 중 둘째아들이다. 자는 군우(君友)이고 초호는 송곡(松谷), 호는 송재(松齋)이다.
천거로 시흥찰방과 수운판관(水運判官)에 제수되었지만 관직에 뜻을 두지 않아 모두 사양하였다.
집안에 전하는 바에 의하면 목천(천안시 동면)에 살던 그는 임진왜란이 끝난 후에 좋은 곳을 찾아
염치 송곡리에 들어와 자리 잡았다. 대략 400년 전의 일이다. 마을 이름을 따서 호를 송곡(松谷)이라
했다. 뒤에 호를 송재(松齋)로 하면서 후손들이‘송재공’
으로 칭한다. 금병산(錦屛山) 자락 장자못 위
에 집을 짓고 강학에 전념하였다. 일찍이 충무공 이순신을 서평 한준겸(韓浚謙)과 서애 유성룡(柳成
龍)에게 천거하였으며, 염치읍 서원리의 인산서원(仁山書院) 건립을 주도하였다.
부인은 양성이씨, 온양정씨, 여흥민씨(驪興閔氏) 등 셋이었다. 두 부인은 사이에 자녀가 없었고 여
흥민씨 선교랑 민영(閔瀛)의 딸 사이에 척(倜) 등 1남2녀를 두었다. 아들 홍척(洪倜, 1580~1645)은
부인 진주강씨 대사헌 강첨(姜籤)의 딸 사이에
우중(又中), 우명(又明), 우징(又澄) 등 3남3녀
를 두었다. 큰아들 홍우중은 송곡리에 거주하
면서 만(萬), 급(
), 억(
) 등 3남을 낳아 점
차 후손이 늘게 되었다. 이 중 셋째아들인 홍
억은 음봉면 월랑리에 가서 자리를 잡았다.
홍익현의 묘는 그의 고향인 목천에 있다. 그
의 후손들은 염치읍 송곡리와 백암리, 음봉면
월랑리를 중심으로 천안의 목천, 연기군 전의
면 대평리, 대전, 서울 등 각지에 살고 있다.
-홍익현의‘송곡동문’각자-
149
아산입향조 |

149페이지 본문끝



현재 포커스의 아래내용들은 동일한 컨텐츠를 가지고 페이지넘김 효과및 시각적 효과를 제공하는 페이지이므로 스크린리더 사용자는 여기까지만 낭독하시고 위의 페이지이동 링크를 사용하여 다음페이지로 이동하시기 바랍니다.
상단메뉴 바로가기 단축키안내 : 이전페이지는 좌측방향키, 다음페이지는 우측방향키, 첫페이지는 상단방향키, 마지막페이지는 하단방향키, 좌측확대축소는 insert키, 우측확대축소는 delete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