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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세 농작물에서의 결작의 징수 등으로 보충하였다 본래의 뜻은 백성들의 부역의 부담을 줄
이고 고르게 한다는 뜻이었으나 실상은 양민의 부담을 줄인데 불과하고 종래 특권층의 독점
이었던 어염업을 국가에 전속하게 한 점에 의의가 있었다.
이 균역법 실시에 따라 온양군에서 부담한 균역세를 기유년 영조
5 )
35
년 납세조로서 여지도서의 기록을 바탕으로 당시의 균세 수납상황을 보면 다음과 같다
읍지에는 별도로 균세 라는 항목이 없이 조적 항목 중에
?????
균역청미
: 27
9
5
6
5
전세와 전부
우리나라에서는 삼국시대와 고려 조선조 시대의 여러 왕조에서 국가의 모든 경비를 농지를
단위로 하는 세금 징수로 충당하였다
은 밭 이고
‘ ’
은 논 인데 이 논밭 의 면적을 기
‘ ’
준으로 징수하는 세금이
이고 국민에게 부과한 각종 부역 요역 대신에 징수하던 세금이
이다 여지도서에 의한 온양군의
의 납부 상황은 다음과 같다
? ①
기유식 영조
5 , 1729 )
년 에 의한 납부 상황은
?????
346
10
2
4
3
6
?????
157
1
2
? ②
계축년의 납부 상황은
?????
2,048
56
4
1,459
결을 제함
???????
계축 시기전이
588
28 .
?????
1,342
14
3
579
44
부를 제함
???????
계축 시기전이
762
3 .
조적
조적은 조선조 시대에 환곡을 꾸어 주거나 또는 받아들이는 일로서 이 행위 뒤에는 환곡
또는 환자 환상 라는 제도가 뒤따른다
환곡법은 삼정의 하나인데 각 고을에서 백성에게서 거두어들인 조세나 꾸어준 곡식을 되돌
려 받는 것을 사창에 간직하였다가 봄철 춘궁기에 백성에게 꾸어주고 가을에 추수가 끝나면
본래 꾸어 주었던 곡식에
1
는 환자 환상 라고도 하여 가장 말썽이 많고 국민 경제와 밀접한 관계가 있었다 가장 이해
관계가 많기 때문에 이속들의
이 많아서 고종 연대에 여러 차례 일어난 민란도 환곡과 관
계가 많았다 이 환곡법의 핵심이 되는 조적에 대한 상황을 여지도서의 기록에 의하여 살펴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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