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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잊혀진시간을말하다3
고, 근래에는 그물로 하였다. 대나무로 양식한 것이 맛이 좋았다. 옛날에는 포자를 붙이는
데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냥 때맞추어 김발을 설치해 놓으면 김이 붙어 자랐다. 나중에는
월도같은섬에서도포자를붙여왔고,인공포자를사용하기도하였다.
여수해 마을에서는 정월 열 나흗날 당제를 크게 지냈다. 먼저 마을회의에서 부정이 없는
사람으로당주와도와주는사람을뽑고걸립을하여제비를마련하였다.당주집에황토흙
을 놓고 금줄을 띠고, 당주는 근신하고 마을 사람들도 함부로 드나들지 않았다. 음식은 당
주 집에서 만들었다. 마을의 큰샘도 깨끗이하고 금줄을 쳐 사람들이 사용하지 못하게 했
다. 젯날 저녁이 되면 당주와 도와주는 마을 사람들이 당산으로 올라가 제를 올린다. 당산
꼭대기에는큰나무가있었고,당집은없었다.
제를마치면소지를올렸다.소지를올리며실수한이야기가마을에서이야깃거리가되기
도했다.어떤당주가소지를올리면서,우리마을평안하고잘살게해달라고빈다는것이,
우리 마을 주민들 빌어먹게 해달라고 빌었다는 것이다. 우스운 이야기이지만 제의 과정을
알수있는이야기이다.
당제 때에는 마을의 뱃기를 모두 당산으로 올려 걸어놓고, 제를 마친 뒤에 각자 배로 가
지고왔다.뱃기가배로내려오면각배에서는뱃고사와용왕제를지냈다.마을의풍물패는
당제때에는소리를내지않다가뱃고사에서부터는소리를냈다.여수해마을의당제는마
을의가장큰행사였다.보령화력발전소로수용되어이주할때까지당제를지냈다.
여수해 주민들은 이웃한 한여, 마동 주민들과 애경사를 함께 하였다. 특히 초상이 나면
서로 돕는 초군계를 만들어 철저하게 운영하였다. 만약 상을 당하면 상주집에 쌀을 얼마씩
가져다 주고, 장례 때까지 일을 돌보아 준다. 의무적으로 나와 상여를 메거나 산소 만드는
일을해야했다.
여수해 마을에서는 독자적으로 상여를 마련하여 사용하였다. 같은 오포리이지만 가그말
이나 매미굴과는 다른 상여를 마련한 것이다. 상엿집은 마을 서쪽, 농배 근처 외진 곳에 있
었다. 상여를 관리하던 사람도 지정되어 있었는데 상여장모라고 하였다. 상여장모는 여름
장마가지나면상여를내놓아건조하는일등상여를관리하는일을하였다.
여수해와 한여 마동 마을은 높은 국수봉 서쪽에 있는 마을이라, 국수봉 아래를 지나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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