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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은 경학을 한다는 유신들이 실제로는 경학도 깊이 있게 모를 뿐 아니라, 마
음도 바르게 가지고 있지 않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사학에 대한 지식이 너무나
부족한 것을 개탄했다. 임금은 사학을 발전시킬 필요를 절감하고 재위 7년 11월
29일에 대제학 변계량에게 사학을 공부할 사람을 뽑아서 올리라고 명했다. 그러자
변계량이 집현전 학자인 집현전 직전 정인지, 집현전 응교 설순, 인동현감 김빈을
추천하자 즉시 수찬 벼슬을 제수했다. 그리고 이들에게 모든 사서를 나누어 읽게
하고, 수시로 임금의 고문에 대비하게 했다.
임금은 집현전 학자뿐 아니라 일반 신하들에게도 사마천의 《사기》를 비롯한 여
러 역사책을 간행하여 널리 나누어 주기도 했다. 세종은 자신의 해박한 역사 지식
을 활용하여 제도를 바꾸고 실용적인 정치와 국방, 그리고 외교를 펴는 데 큰 도
움을 받았다. 세종이 비록 재위 기간에 완성을 보지는 못했지만, 정도전이 편찬한
《고려사》를 새로 편찬하는 데 힘을 기울이고, 《동국세년가》, 사마광의 《자치통감훈
의》, 《치평요람》, 《용비어천가》 등의 역사책을 편찬한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이상과 같이 세종은 재위 기간 내내 신하들의 역사에 대한 무지를 비판하고 경
학 우선론에 대한 사학(史學)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경학은 정치의 원론을 제시한
학문이지만, 정치의 현실 경험에서 교훈을 얻으려면 사학에서 배우는 것이 더 낫다
고 여겼다. 사학을 배우면 정치를 잘하고 못한 것이 현실적으로 환하게 증명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나치게 원론에만 치우치다 보면 국가건설에 필요한 실용적 지혜
를 얻기가 어렵다고 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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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주향토문화(洪州鄕土文化) 제36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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