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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우는 학관으로 사과이며 이녀는 이민하·조경희에게 시집갔고 재종
형 상묵의 아들 한제로 아들을 삼으니 문과로 승지이다. 학관의 일남
은 덕제이며 삼녀는 신숙조·이의도·송순일에게 출가했다. 승지는 생가
의 형님 유제의 아들 기원으로 아들을 삼으니 진사이다. 진사는 6남
을 낳았으니 석환은 본생으로 돌아갔고 태환·동환·용환·경환·국환이
다.
선생은 효도와 우애가 하늘로부터 타고나서 부모와 여러 숙부모를
섬김에 지성으로 해서 조금도 사이가 없었다. 유당공이 유배될 때 선
생은 애통해서 살고자 하지 않았으며 밤에는 반드시 울면서 하늘에
축원하여 잠을 이루지 못하고 추위나 더위나 한 가지 옷으로 바꿔
입지 않았고 돌아옴에 이르러서야 그만두었고 늦게도 삿갓을 쓰고
촛불을 가지고 발을 벗은 채 밤에 궁궐 밖에 엎드려 벼슬을 돌려 내
리기를 하소연하기를 여러 차례 하였다. 정사년에 비로소 그 청원을
얻었는데 선생은 이미 앞서서 돌아갔다. 바야흐로 병환이 머물러 있
을 때 중씨도 병이 들었는데 선생이 아침저녁으로 그곳에 가서 부축
해 드리고 진찰했으며 병이 이미 위급함에도 “중씨의 약을 시험했느
냐?” 하고 물었다. 한 마음으로 임금과 나라를 위해서는 화복으로 인
해서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으니 그 정충명백한 기상은 가히 해와 별
에도 닿고 쇠와 돌에도 관철한다 할 것이다. 제주도에 있을 때 헌종
임금이 편첩을 써 내라고 명령한 데에 홍두시첩이 있었다. 선생은 홍
두의 뜻이 마침내 꾸미는 글이라 해서 조그마한 발문을 써서 풍자하
는 뜻을 부치니 말하되 “이미 글씨로 올리니 말로 올릴 만한 것이
있습니다. 알면서 말하지 않음은 또한 감히 못하는 일입니다.” 하였
으니 지조를 변하지 못함이 으레히 이와 같았다. 후진을 권장하기를
148 예산군지(193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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