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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경(典經)김구(金絿)가아뢰기를,
“순제는 말은 비록 훌륭하지만 그 말을 실천하지는 못하였는데, 그 사람은
취하지않더라도그말은취하지않을수없습니다.”
하였다.
◎1514년(중종9)7월8일(기사)
홍언필(洪彦弼)을 홍문관 응교(弘文館應敎)로, 이빈(李?)을 홍문관 교리로,
민수원(閔壽元)을 홍문관 박사로, 김구(金絿)를 홍문관 저작(弘文館著作)으
로, 임권(任權)을 홍문관 정자로, 심순경(沈順經)을 경상도 병마 절도사(慶
尙道兵馬節度使)로,이권(李?)을경상도수군절도사로삼았다.
◎1514년(중종9)8월21일(신해)
이계복(李繼福)을 한성부 좌윤(漢城府左尹)으로, 이장생(李長生)을 우윤(右
尹)으로, 연구령(延九齡)을 지평(持平)으로, 윤지형(尹止衡)을 홍문관 수찬
(弘文館修撰)으로, 김안정(金安鼎)·민수원(閔壽元)을 부수찬(副修撰)으로,
김구(金絿)를박사(博士)로삼았다.
◎1514년(중종9)11월12일(경오)
조강에 나아갔다.《예기(禮記)》를 강하다가‘문백(文伯)의 초상에 붕우(朋
友)와 여러 신하는 곡(哭)하지 않았는데도 내인(內人)은 모두 곡을 하여 실
성(失聲)하였다.’는말에이르러,사경(司經)김구(金絿)가아뢰기를,
“이것은 반드시 부인에게는 후하면서도 붕우에게는 박대한 까닭으로 이같
이 된 것입니다. 대저 내폐(內嬖)가 있으면 비록 선비를 예로써 대우하려고
하더라도 될 수가 없는 것이니, 반드시 내폐를 먼저 없앤 후에야 현사(賢士)
를 성심으로써 접대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옛사람이 말하기를‘어진이 좋아
하기를 여색 좋아하듯 하라.’하였으며‘나는 덕을 좋아하기를 여색을 좋아
180)
하듯 하는 사람을 보지 못했다.’하였습니다. 경강(敬姜)
은 비록 부인이지
180)경강:문백의어머니
7장조선왕조실록에기록된내용│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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