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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조판서 홍윤창(洪胤昌, 1484~1546)이고 어머니는 안성이씨(安城李氏)로 현령 이정숙(李正叔)의
딸이다.
차남으로 태어난 홍온은 초명이 황(晃)이고 자는 경휘(景輝)이다. 부인은 흥양신씨(興陽申氏)로 군
수 신윤필(申允弼)의 딸이다.
1549년(명종 4) 진사시에 급제하고 관직은 장원서(掌苑署) 장원(掌苑-정6품)에 이르렀다. 그는 경
기도 남양(南陽)에 거주하다가 처가(妻家)가 있는 아산 염치 대동으로 내려와서 자리 잡고 살게 되었
다. 후손이 끊어진 흥양 신씨 집안의 묘에 남양 홍씨 문중에서 지금까지도 외손봉사(外孫奉祀)로 제
사를 모시고 있다.
그는 가신(可臣), 민신(敏臣), 경신(慶臣), 덕신(德臣) 등 네 아들을 두었다. 장남인 만전당(晩全堂)
문장공(文壯公) 홍가신(洪可臣, 1541~1615)은 임진왜란 중 홍주목사로 재임하며 이몽학의 난(1596
년)을 평정하는 데 공을 세워 청난공신(淸難功臣) 1등으로 영원군(寧原君)에 봉해졌으며, 형조판서에
올랐고 아산의 인산서원(仁山書院)과 온양의 정퇴서원(靜退書院)에 배향되었다. 홍온은 장남 홍가신
으로 인해 영의정(領議政)에 추증되고 익녕부원군(益寧府院君)에 봉해졌다. 둘째아들 홍민신은 진사
시에 합격하고 형조좌랑에 오르고 정난원종공신에 녹훈되었고, 셋째아들 홍경신은 문과급제 후 호조
참의 등 여러 관직을 거쳐 부제학에 이르렀다.
이와 같이 그가 아산 대동리에 자리 잡은 이후 후손들이 크게 번창하며 오늘에 이르고 있다. 그의 묘
는 경기도 과천(果川)에 있었으나 서울시 확장으로 인해 1967년에 그가 살던 염치읍 대동리로 옮겨
모셨다. 후손들은 염치읍 대동리를 중심으로 아산시 각지에서 살고 있다.
-홍온의 묘-
-아들 만전당 홍가신 기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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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산입향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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