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 156페이지

148페이지 본문시작

이달의문화인물-문화관광부1999년6월
1.맹사성(孟思誠,1360~1438년)
조선 세종대왕 때 향악의 권위자, 청백리로 이름 높은 명재상 맹사성 선생
은 1360년(고려 공민왕 9년) 지금의 개성 근교 농촌에서 아버지 맹희도(孟希道)와 어
머니 흥양 조씨 사이에서 태어났다. 5세에서 10세 사이에 한산을 거쳐 지금
의아산시배방면중리(행단)로이사를하게되었다.
선생은 어렸을 때부터 효성이 지극하여 10세 되던 해에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자 7일간 물 한 모금 마시지 않고 어머니를 추모하며 3년 동안 묘막생활
을 하였다. 27세의 젊은 나이로 선생은 문과에 장원급제하여 춘추관검열이
된데이어전의시승,기거랑,우헌납등의벼슬을차례로역임하였다.
42세 되던 해에는 공주목사가 되었고 47세에 이조참의에 임명되었다.
1407년에는 예문관제학으로 있으면서 세자(양녕대군)의 스승이 되기도 하였고
1412년 풍해도(황해도) 도관찰사로 임명되었을 때에는 하륜이 악보에 밝은 선
생을 서울에 머물러 악공을 가르치도록 아뢰어 그대로 시행되는 등 음악의
천재적소질을인정받아박연과함께조선초기음악을정리하였다.
1416년 이조참판과 예조판서가 되었고 1417년에는 아버지의 병환이 중해
지자 세종이 선생을 충청도 도관찰사로 임명, 부친을 간호케 하는 편의를 제
공하고 친히 약까지 지어주기도 하였다. 1418년 부친상을 당하자 나라에서
는효자정문을세우고,한신축동에효자비를세웠다.
1419년 세종대왕이 즉위하면서 유능한 관리등용을 위하여 사심이 없고 청
렴한선생을이조판서에임명하여인재등용을꾀하였다.
1425년에는 문신으로는 최초로 삼군도진무가 되었다. 1427년 나이 68세에
우의정에 임명되었고 같은 해에 간신들의 상소로 오해를 받아 우의정 직을
파면당하였다가혐의가풀려다시우의정자리를되찾는일도있었다.
146

148페이지 본문끝



현재 포커스의 아래내용들은 동일한 컨텐츠를 가지고 페이지넘김 효과및 시각적 효과를 제공하는 페이지이므로 스크린리더 사용자는 여기까지만 낭독하시고 위의 페이지이동 링크를 사용하여 다음페이지로 이동하시기 바랍니다.
상단메뉴 바로가기 단축키안내 : 이전페이지는 좌측방향키, 다음페이지는 우측방향키, 첫페이지는 상단방향키, 마지막페이지는 하단방향키, 좌측확대축소는 insert키, 우측확대축소는 delete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