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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령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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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는 못했다. 다만 당시 7명의 청년 중 유일하게 고등학교를 졸업한 박모 친구는 보령 군청
의직원으로특채되었다.그사람이유일하게혜택을받아출세하였다.당시종이에도장을
찍어 나누어 주었는데, 전국 어디서나 먹고, 자고, 타는 것이 무료라고 하였다. 그러나 시골
청년들이사용할수는없었다.
용구멍을폭파하였다
이후 간첩들이 은거했던 용구멍은 폭파되어 없어졌다. 입구는 좁고, 안에는 넓으며 겨울
에 따뜻하고 여름에 시원하며 물까지 있기 때문에 간첩들이 은거하기 좋다고 판단했기 때
문이다.이곳은전망도좋아먼바다까지내다볼수있는곳이었다.
대섬근처갯벌에서는백합양식을하였다
대섬 근처 갯벌에서는 1960~1970년대 백합양식을 하였다. 서산 사람이 와서 했는데 아
주 넓은 면적이었다. 나라의 지원을 받아 하였으나 돈을 벌지는 못했다. 그곳에서 백합을
잡아생활하던주민들은양식장에서일해품삯을받았다.
방목마을에는1940년대에천연두가유행하여
4명의어린이가죽고4명의어린이얼굴에흉터가생겼다
1940년대방목마을에서는4명의어린이가죽고4명의어린이가살아남았으나얼굴에흉
터가있었다.이중3명은여자였다.당시천연두때문에이웃에마실도가지않았다고한다.
이정부 씨의 어머니는 아들들을 살리기 위해 부엌, 장독, 굴뚝 등에서 비손하느라고 손과
얼굴이모두터졌다고전한다.
양항리방목마을에서1940년대에태어난아이들은자치기,공차기,갈퀴치기등이었다
1940년대에 태어난 방목 아이들은 자치기를 많이 했고 짚검불을 뭉쳐 공을 만들어 차고
놀았다. 마을 근처 산으로 나무하러 가서는 갈퀴치기도 하였다. 갈퀴치기는 나무를 한 번
해놓고,갈퀴를돌려떨어드려맞추면먹는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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