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 186페이지

145페이지 본문시작

세종은 바로 사상의 원전은 읽지 않고 해설서 두세 권 훑어보는 학자들이나, 역
사를 한다고 철학은 몰라도 된다든가, 철학을 하니 역사는 알 필요가 없다는 신하
들을 통렬하게 비판하고 있다. 그런데 왜 세종은 신하들과 달리 사서(史書)도 경서
(經書)에 버금가는 비중을 두었던 것일까?
세종은 지중추원사 정인지에게 이르기를 ‘무릇 잘된 정치를 하려면 반드시 전대
(前代)의 치세(治世)와 난세(亂世)의 자취를 보아야 할 것이요, 그 자취를 보려면 오
직 역사의 기록을 헤아려야 할 것인데, 주나라 이래 대대로 역사가 있으나 편찬한
것이 방대하여 쉽게 두루 상고할 수 없다. 내가 근래에 송유(宋儒)사 편찬한 자경
편(自警編)을 보니 가언과 선생을 절(節)로 나누어서 유형에 따라 편찬하였는데, 간
결하게 요약하려고 힘썼으니, 예전의 서적을 저작한 자가 사람들이 즐겨 보도록 하
려고 한 것을 알 수 있다. 진실로 사람마다 학문에 대하여 박람(博覽)하기가 어려
운 것인데, 하물며 임금이 만기(萬機)를 보살피는 여가에 능히 박람할 수 있겠는가.
경이 사적(史籍)을 상고하여 열람해서 그 선하고 악한 것에 가히 권할 만한 것과
피해야 하는 것을 뽑아내어 하나의 서적으로 편찬하여, 관람하기에 편케 하여 후세
자손의 영원한 거울이 되게 하라’고 하였다.(세종23년 6월 28일).
또한 사학(史學)을 진흥시키기 위해 세종은 집현전 학자인 윤회에게 ‘내가 집현
전 유신들에게 모든 사서를 나누어 주어 읽게 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윤
회가 반대하면서, ‘옳지 않습니다. 대체로 경학이 우선이고, 사학은 그 다음이오니,
오로지 사학만을 닦아서는 안 됩니다.’라고 말했다. 그러자 임금은 고집을 꺾지 않
고 이렇게 반박했다.
“내가 경연에서 《좌전》, 《사기》, 《한서》, 《강목》(자치통감), 《송감》에 기록된 옛
일을 물으니 다 모른다고 말했다. 만약 한 사람에게 읽게 한다면 고루 볼 수 없을
것이 분명하다. 지금의 유산들은 말로는 경학을 한다고 하나, 이치를 궁극적으로
밝히고 마음을 바르게 가진 인사(人士)가 있다는 것을 아직 듣지 못하였다.”하였다
(세종7년 11월 29일).
145
홍주 향토문화의 창

145페이지 본문끝



현재 포커스의 아래내용들은 동일한 컨텐츠를 가지고 페이지넘김 효과및 시각적 효과를 제공하는 페이지이므로 스크린리더 사용자는 여기까지만 낭독하시고 위의 페이지이동 링크를 사용하여 다음페이지로 이동하시기 바랍니다.
상단메뉴 바로가기 단축키안내 : 이전페이지는 좌측방향키, 다음페이지는 우측방향키, 첫페이지는 상단방향키, 마지막페이지는 하단방향키, 좌측확대축소는 insert키, 우측확대축소는 delete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