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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40~1817)는 꽃과 나무를 가꾸고 의약에도 조예가 깊어 왕(정조)을 진료하기도 하였다. 이후 주
부, 군수, 부사 등 여러 내외직을 거치고 호조참판 겸 지의금부사, 오위도총부 부총관에까지 올랐으
며 가의대부(嘉義大夫-종2품)로 승차된 뒤 사직을 허락받았다. 귀향 후 그가 죽었을 때 집에 곡식 한
섬이 없었을 만큼 검소하게 살았다고 한다.
풍산홍씨 후손들은 배방읍 세교리와 회룡리를 세거지로 하여 인근 천안과 당진, 그리고 서울 등에
널리 퍼져 오늘에 이르고 있다.
-홍중징의 묘(세교리)-
-풍산홍씨 사적비(회룡리)-
[153] 남양홍씨 홍온
| 洪
<1521년(중종16년)~1579년(선조12년)>
조선 중기의 문신·학자이며 남양홍씨(南陽洪氏) 13세로 남양홍씨 토홍(土洪)계 참의공파 아산시
염치읍 대동리(황골) 입향조(入鄕祖)이다. 대동리 출신으로 현재 모종동에 거주하고 있는 후손 28세
(世) 홍승욱(洪承旭, 62세)씨의 15대조이다.
고조는 문과급제 후 중추원사에 오르고 좌익원종공신1등에 책훈된 홍익생(洪益生)이고 증조는 무
과 급제 후 경상좌도 수군절도사를 지낸 홍귀해(洪貴海)이며, 조부는 문과급제(1485년) 후 이조참의
에 오르고 무오사화에 유배당한 홍한(洪瀚)이다. 아버지는 생진과에 급제하고 내섬시 판관을 지낸 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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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산입향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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