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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여 아침에 출발해서 저녁에 제주도에 이르렀으니 또한 이상하도다.
제주도에서 9년을 살면서 더욱 한가로워 글을 연구하고 고을 사람을
가르치니 문명이 크게 열리었다.
철종 신해년에 권정승 돈인이 종이의 예문을 논박하다가 권신 척
신에 거슬려서 연산으로 유배되고 선생은 주사에 좌죄되어 북청으로
옮기니 선생이 웃으며 이야기하고 손수 서책을 정돈하며 떠났다. 임
자년에 풀려서 돌아오니 과천의 유당공 묘소 아래서 살다가 5년 만
에 돌아갔다. 선생은 특이한 자품으로 태어나서 천품이 남보다 뛰어
났고 겨우 20여 세에 백가서를 관통하니 산과 바다같이 높고 깊었다.
중국 가서 학사대부들 사이에서 강마하며 청나라 문화의 원류를 더
듬고 섭렵하니 그 방박지고 왕량함은 보통 사람으로서 따를 바가 아
니었다. 만년의 요약된 공부는 13경에 있었으며 더욱 주역과 예학에
밝았다. 옛것을 고증하고 지금에도 참고하여 실지의 일에 옳음을 찾
았으며 한나라와 송나라의 학문에 공평함을 잡아 의리의 정밀한 데
로 돌아가기를 힘쓰니 대저 선생의 경학연구는 다른 사람들의 경학
공부와 달랐도다. 세상과 합하지 못하여 유배 추방을 만남도 또한 연
유가 있을 것이다.
선생이 일찍이 대립소조에서 쓰기를 “담계는 옛 경서를 즐기었다
했고 운대는 남이 말하는 대로 말하기를 즐겨하지 않았다.” 하였으니
‘두 분의 말이 나의 평생을 다한 말이다. 어찌해서 바다 하늘의 한
삿갓이 갑자기 원우의 죄인과 같이 되었는가?’ 하였다. 고환 강위는
민기원의 부탁으로 바다를 건너 찾아가서 선생을 뵙고 배움을 청하
니 선생이 탄식하며 이르되 “그대는 나를 보지 못하는가? 경서를 다
스리는 효험이 이와 같으니 이를 배워서 끝내 어디에 쓰겠는가?” 하
146 예산군지(193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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