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禮山의
이영규(李榮圭)(1863~1915)
천도교예산교당도정수암이용우의조부이영규(변성명聖天.
족보명 天凡. 도호는 靈庵)는 1863년(계해) 12월 14일에 태안
군이원면당산리에서출생하였다.체구가장대하고성품이청
렴했으며 용기가 있어 타인의 시비에 명변하고 중인의 집회와
설득에능하여동학당산포(堂山包)로조직활약하였다.원북면
방갈리동학도우김상배의매씨와혼인하여함께동학혁명에참
여했다.관작전투에서대승하고홍주성전투에참여빙고치부근
이영규
에서왜군과전투를벌여성공격을감행했으나왜군의신무기
에당할수없어수많은동료를잃고구사일생으로겨우생명을보존하였다.후퇴하여당산리
생가인 배나무안집에귀하였으나동학군을체포하여대창과작두로무참하게살육하니목선
을타고여러도인들과함께바다로피신했지만풍랑이심해항해할수없어안면도해안가에
대피했다가새벽에광천나룻배턱에상륙하여보부상으로위장하여호구책과서로연락하면
서천안광덕산만복굴에서움막집을짓고정착하였다.이곳에서철점을설치하고솥장사로연
명하면서목천일대를다니면서동학비밀연락망을구축하였다.이후동학농민군지목이뜸한
1905년경함께피신해왔던교인들과함께은신에서벗어나무한천변인탄중리로옮겨중앙본
부의암손병희,춘암박인호등의명을받들어동학포덕사업과갑진개화운동을펼쳐나갔다.농
민군의집단정착지탄중리가동학재건및항일애국독립운동의단초를연본거지가되었다.
왜경의지목이날로심해지는탄중리에서왜경은총으로무장한일인괴한을보내애국운동
의선구자인이영규를무한천모래둔치로끌고가1915년12월24일무참히살해했다.이때영
암이영규의나이52세이니슬하에2남을두었는데장자가10세의나이로동춘(同春)이요자
는회환(會還)이며도호는동암(同庵)이다.차자는동선(同仙)이오자는회문(會文)이며도호
는선암(仙庵)이다.동춘은부친의피습광경을직접보았다고한다.총명이남달리영리한동춘
은후일어렸을때사건을후손들에게전해주었다.후손들은동학정신과애국운동의뜻을펼치
다돌아가신영규할아버지의유지를받들어민족사상의정립과세계인류의평화실현과후천
개벽을발현시키위해동학의맥을잇고있다.
영규할아버지에대한증거자료유물은탄중리99번지에살때주택이낮아장마에침수되어
귀중한가보자료인 도첩(道帖)기록및가계등이유실되어매우안타까운일이다.
후일가계는태안만대까지더듬어족보편집인회인(會仁)을찾아가확인하여가계를잇고있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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