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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령시보령의바다
원들은상이나면상여를메고,산역일
5)
을하였다.
오무섭 씨는 마을에 초상이 났을 때 주로 묘지 만드는 일(산역일) 하였다. 먼저 나무를 베
고,뿌리를캐낸후,광중안을팠는데,시신의크기를생각하여적당한크기로팠다.시신은
관째로 넣거나, 관을 빼고 넣는데, 어떤 경우든지 흙을 약간 덮고, 명정을 덮은 후 칠성판을
덮는다. 칠성판 위에는 과거에는 회다짐을 하였지만 요즘은 하지 않는다. 회다짐 이후에는
흙을 덮고, 봉분을 만든다. 봉분은 지형을 보아 높은 곳을 파다가 만든다. 봉분에는 잔디를
심어 마무리하는데, 잔디는 양지바른 곳에서 가져오거나 바닷가에서 가져왔다. 근래에는
구입해서사용한다.
마동 마을 아래쭉뿌리 안쪽(동쪽)에는 300평짜리 밭이 있었는데, ‘저건너밭’이라고 불렀
다.오무섭님소유의밭이었고사는집의건너편에있어서붙인이름이다.이밭의안쪽언덕
밑에서는 옛날 기와가 적잖이 나왔고, 마을에서는 기와를 주워다가 가루 내어 명절 때, 놋
그릇을닦는데사용하였다.
현재 이지함선생 묘역 주차장 옆에는 넓적한 2개의 돌이 있다. 이 돌은 묘지 아래 큰메골
앞 해안에 있던 바위이다. 주변에는 1마지기 정도의 논이 있었고, 논 아래 갯벌에 있던 바위
를이지함선생이타고다녔다는전설이있어옮겨다놓은것이다.
보령화력발전소 회처리장 때문에 고만마을에 살던 주민들은 대부분, 마을 북쪽 도로변
으로이주하였다.그후이주한마을도고만으로불리면서,원래의고만을원고만이라고부
른다.
현재 고만마을에는 대나무가 울창하다. 고만마을의 대나무는 김발 매느라고 오무섭 씨
가신대리에서캐다심었다.김발을맬때에는대나무가비쌌으나현재는김발을매지않을
뿐만 아니라, 김발을 매는 곳에서도 그물로 매기 때문에 대나무가 필요 없어 천덕꾸러기가
되었다.
5)땅을파서묘를만드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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