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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 정문하여 열녀라 하였다 할아버지의 휘는 이주로 우참찬으로 증
좌찬성이고 시호가 정헌이니 덕망과 학문이 함께 넉넉하여 조야에서
의지했고 아버지 휘 노영은 예조참판이고 어머니 정부인 남양홍씨는
현령 휘 대현의 따님이다. 선생은 실상 참판공의 막내 아우 이조판서
유당 휘 노경의 장자로 입계해서 계사가 되었다. 본생 어머니는 증정
경부인 기계유씨로 군수 휘 준주의 따님인데 임신한 지 24개월 만에
선생을 낳았으니 정조 병오년 6월 3일이다.
여섯 살 때 춘첩(春帖)을 써서 문에 걸었는데 정유 박공이 보고 다
르게 여겨 유당공을 찾아 선생을 보고 크게 칭찬하며 말하되 “마땅
히 학문과 예술로 세상에 이름이 날릴 만하니 내가 장차 가르쳐서
성공시키겠다.” 하였다. 순조 기사년에 진사가 되고 겨울에 유당공을
따라서 중국 연경에 가니 옹담게 방강과 완운대 원이 세상에 드문
박학으로 명망과 벼슬이 함께 높았는데 선생을 한 번 보고 막역간이
되었으니 경서의 뜻을 변론함에 깃발을 서로 내리지 않을 만하였다.
이에 석묵서루의 백가비적으로 주니 여기서부터 전날에 부사에게 깊
이 배운 바와 또한 좌우로 서로 만나게 되었다. 오난설·주백한·섭동
경·옹성원·이심암·조옥수·주야운·이묵장·홍개정·김의원·근원 등 여러
명사들이 다 사모해서 사귀고 싶어 했으며 박통한 선비로 추대하고
그후로 비첩과 화축과 시통과 문권을 서로 이어 교환해서 빈 해가
없었다. 운대는 경해를 지었으니 1,400권이고 13경 교감기와 경적찬
고 등의 글이 모두 큰 저술인데 그 당시 여러 대가들도 본 이가 없
는데 특별히 먼저 선생에게 초본을 보냈고 담계가 돌아갈 때 필기
일부와 정심사부서와 시의서법을 보냈고 또한 일찍이 구양문충공과
황문절공의 초상을 모방해서 선생의 생일의 축수를 하였으니 두 분
144 예산군지(193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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