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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 양천허씨 허린
| 許璘
<1661년(현종 2년) ~ 1753년(영조 29년) >
조선 후기의 무신으로 양천허씨(陽川許氏) 23세(世)이며 고산공파 아산시 염치읍 산양리 입향조이
다. 현재 염치읍 산양리에 거주하는 후손 32세(世) 허창욱(許昌旭, 85세)씨의 9대조이다.
인조 때 좌승지를 지낸 고산(孤山) 허항(許恒)의 증손자이고 문과급제 후 현감을 지냈고 통정대부에
오른 허감(許橄)의 손자이다. 아버지는 대사헌에 추증된 허집(許緝)이다. 어머니 신창맹씨는 참판 맹
세형(孟世衡)의 딸과 평산신씨 현감 신평(申
)의 딸이며 생모가 누구인지 확인되지 않는다.
허린은 3남1녀 중 둘째아들이며 자는 사염(士琰)이다. 부인은 기계유씨(杞溪兪氏)로 군수 유하진
(兪夏震)의 딸과 남양홍씨(南陽洪氏)이다. 허린이 언제 왜 염치 산양리로 들어왔는지 확인되지 않는
다. 어머니의 친정이 온양이고 부인 둘 모두 아산 지역과 관련이 있을 것으로 보아 외가 쪽 인연 혹은
혼인으로 인해 들어왔을 것으로 추정한다.
그는 1730년에 절충장군 첨지중추부사, 1735년에 행용양위 부호군 겸 오위장에 제수되었다. 90세
되던 1750년에 아들 허옥(許沃)으로 인해 정헌대부에 가자되고 동지중추부사 행돈녕부도사에 제수
되었다. 문중에서는 증직인 동지중추부사에 따라‘동추공(同樞公)’
으로 칭한다. 묘는 아산시 인주면
해암1리 안골 종중 묘역에 있다.
그의 아들 허옥(許沃,1680~1744)은 문과급제 후 대사간과 좌승지 등을 거치고 통정대부에 올랐다.
이후 후손들이 학문과 관직에서 여럿이 이름을 알렸으며 현재는 염치읍 산양리를 중심으로 각 지역
에서 거주하고 있다.
-허린의 묘-
-아들 허옥의 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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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산입향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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