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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령시보령의바다
질을 하였는데, 옛날에는 천여 마리를 낚기도 하였다. 잡은 복쟁이는 내장을 빼고 장벌에
말려 내다 팔았다. 배가 짐 싣는, 넓적한 주냄비여서 이동하는 데 상당히 힘들었다. 복쟁이
를 잡는 계절은 보리누르미라고 하는, 보리가 누렇게 익어가는 계절이다. 이때 우럭도 많이
잡혔는데,옛어른들은우럭과복쟁이가서로교미하기때문에우럭알도복쟁이알과같이
독이있다고믿었다.그래서우럭알도절대먹지않았다
1)
.
오무섭 씨는 쟁기질 기술자였다. 쟁기질은 소가 어느정도 커서 일할 수 있을 때, 끄시렁쿠
를 끌고 다니면서 일을 가르친다. 길바닥이나 장벌에서 끌고 다녔는데 대개 1달이면 배울
수 있었다. 소를 기르지 않는 집에는 소를 기르는 사람이 논을 갈고 쎄레질까지 해 주어 모
를심게한다.
오무섭 씨는 자기 논 50마지기와 남의 논 20마지기를 갈고 관리하였다. 남의 논에서는
마지기당 1.5명의 품을 받았다. 너무 논을 많이 갈기 때문에 소가 늘 어려웠고, 발톱이 닳아
절룩거리기도하였다.그래서소에게짚신을신겨주고,각종보약을먹였다.
오무섭 씨는 최초로 지하수를 개발하였다. 모래땅이라서 개발하기 좋았다. 이런 샘에서
는 두레박으로 물을 퍼 논에 댔다. 이후에는 파이프를 박아 모터로 뽑아 사용하였다. 저수
지가없었어도지하수로농사지을수있었다.
옛날, 농약이 나오기 전에는 논에 복쟁이 기름을 뿌려 벌레를 잡았다. 복쟁이 기름은 복
쟁이의 내장(알 포함)을 삶아 농축하여 만든다. 병에 넣고 솔잎으로 막은 후, 논바닥에 군데
군데떨어뜨리면벌레가죽었다.
오무섭 씨가 12살 때 쯤 집 앞 갯벌을 관찰해 보니 떠내려 온 대나무의 작은 가지에 김이
붙어 있었다. 그래서 신우대 나무를 바다에 꽂았더니 김이 잘 붙었다. 다음에는 왕대를 사
용했다. 오무섭 씨가 최초로 김양식에 성공한 것이다. 하루 생산량이 3천~4천장이었고, 비
싼 값에 팔 수 있었다. 많은 돈을 벌었다. 이후에 주변지역 주민들까지 모두 김발을 매서 많
은돈을벌었다.
6·25당시 인민군 소대가 고만에 들어와 오무섭 씨 댁에 살았다. 그들의 임무는 산에 호
1)필자가 어렸을 때도 우럭알에 독이 있다고 먹지 않았다. 필자는 복쟁이와 우럭이 교미한다는 이야기는 듣지 못했
다.우럭알과복쟁이알은서로비슷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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