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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9] 강릉함씨 함수억
| 咸秀億
<1794년(정조18년)~1852년(철종3년)>
조선 후기의 인물로 강릉함씨(江陵咸氏) 50세(世)이며 강릉함씨 해미파 아산시 지역 입향조이다.
선대는 당진 순성면 일대에 거주하였으며 선장면 장곳리 노루지로 들어와 정착하였다. 선장면 대정
리에 거주하고 있는 55세(世) 함동규(咸東圭, 75세)씨의 5대조이다. 대략 180년 전으로 추정한다.
함수억의 고조부는 함무열(咸武烈)이며 증조부는 함용해(咸龍海), 조부는 함인창(咸寅昌)이다. 아버
지는 함유상(咸有祥)이고 어머니는 남양홍씨(南陽洪氏)로 홍영하(洪榮夏)의 딸이다. 그의 초명은 진
우(鎭佑)였으며 부인은 밀양박씨(密陽朴氏)이고 박영현(朴英賢)의 딸이다.
조선 후기에는 선장 일대에 간척사업이 이루어지고 곳곳에서 여러 사람들이 토지를 확보하기 위해
들어와 자리 잡는 일이 많았다. 집안에서 전해지는 말에 따르면 함수억도 역시 이곳에 들어와 궁개
와 안개 일대의 간척에 참여하여 기반을 확보하였다고 한다.
그는 홍철(弘哲), 홍모(弘謨), 홍선(弘善) 등 세 아들을 두었으며, 그들이 아들을 한두 명씩 두었는
데 그 중에서도 특히 함홍모의 후손이 많은 편이다. 대부분 선장의 대정리, 봉농리, 장곳리 등에 거주
하였고 일부는 송악면 강장리로 이주하기도 했다.
함수억의 묘는 원래 삽교천 건너 합덕 운산리에 모셨는데 장례 때에도 배로 건너다니느라 어려움이
많았다. 그래서 후손들이 도고면 향산리에 선산을 마련하고 그의 묘는 물론 당진 순성면 지역에 있던
5대조 함이천(咸以天)의 묘도 지난 2001~2년에 걸쳐 옮겨 모셨다. 더불어 함이천 이후 이른바 해미
파의 후손들 묘는 납골당을 세워 함께 모시고 있다.
함수억의 묘와 종중 납골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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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산입향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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