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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령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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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북쪽은돌로가로막혀있고,남쪽은열려있는모서리에성인이바듯이들어갈수있는
구멍이 뚫려있고, 안은 넓어 두어 평의 평지가 있는 곳이다. 더구나 안쪽 바닥은 평평하고
경사져있으며아래에깨끗한민물이고여있어식수로도사용할수있었다.
1965년 이 용구멍에서 은신하던 간첩 3명이 발견되어 체포되었고, 그 후 용구멍을 폭파
하여없앴다.
방목마을에는당집도성황당도없었다
방목 마을에는 당제를 지내지 않았고 당집도 없었다. 당산이라고 불리는 산도 없다. 뿐
만 아니라 성황당도 없어, 서낭제를 지내려는 사람들은 멀리 개목마을 성황당에서 제를 올
렸다. 방목이라는 마을이 생긴 지 얼마 안 되기 때문에, 당산을 마련하지도 않았고 당제도
지내지않은것으로보인다.마을자체가당제가소멸된뒤에형성되었기때문으로보인다.
방목마을에서는1960년대초반까지두레를하였다
방목마을에는 1960년대 초반까지 두레를 하였다. 마을에서 두레를 하자고 공론이 돌면
구장(이장), 반장을 중심으로 두레를 하였다. 두 벌 맬 때 하였고 일꾼은 약 50여 명이 나왔
다. 풍물패는 있었으나 꽃내비를 태우고 놀지는 않았다. 마을 주민들이 흥겹게 논 것은 설
명절 때였다. 1950년대까지 설이면 색동저고리를 입힌 무동을 어깨위에 올려놓고 춤을 추
고 놀았다. 두레에서는 놀이보다는 논매는 데에 치중한 것으로 보인다. 두레 때 논을 가진
사람들이돈을내어마을자금을마련하였다.
기우제는둥구산말랭이에서지냈다
방목마을에서는당제는지내지않았지만기우제는지냈다.이정부씨가어렸을때본기
억이있다고하므로1950년대초까지지낸것으로보인다.기우제를지낼때횃불을만들어
둥구산말랭이에서 지냈다. 이곳은 양기리, 양항리 주민들이 기우제를 지내는 곳이고, 산 너
머웅천읍구룡리주민들도이곳에서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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