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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승장은 자가 군성(君成)이며 족보에는 통정대부로 호군(護軍)을 지냈다고 기록되어 있다. 1570년
경에 출생한 것으로 추정된다. ‘의용군 비슷하게 왔다고 하더라’
는 이야기가 집안에 전한다. 의용군
이라는 것은 의병을 말할 텐데 의병 활동을 했는지는 확인되지 않고, 임진왜란 때 피난하면서 신창으
로 들어왔을 것으로 본다. 배를 타고 아산만과 곡교천을 통해 들어왔을 것으로 본다. 대략 400여 년
전의 일이다.
부인은 김해김씨(金海金氏)로 김택화(金澤化)이다. 묘는 신창면 신곡리 사직동에 있으며 후손들의
묘도 그 아래 함께 있다.
그는 외아들 영호(榮豪)를 두었고 손자 희남(希男), 증손자 여민(汝敏)까지 독자로 이어지다가 최여
민이 건태(乾泰)와 항태(恒泰) 두 아들을 둔 이후 점차 후손이 늘게 되었다. 현재 후손들은 신곡리 일
대를 중심으로 신창 가내리, 염치 강청리, 인주 공세리, 온양, 예산 덕산과 봉산, 공주, 천안 등 각지
에 널리 퍼져 살고 있다.
[146] 진양하씨 하선호
| 河善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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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인물로 진양하씨(晋陽河氏) 31세이며 사직공파(司直公派) 영인면 신운리 입향조이다.
아버지는 하청원(河淸元)이며 어머니는 천안전씨(天安全氏)이다. 하선호의 초휘(初諱)는 경선(慶善)
이며 자(字)는 치서(致西)이다. 부인은 경주최씨(慶州崔氏)이다. 묘는 냉정리에 있다. 후손 중 하장홍
은 신양금속 사장이며 아산장학회를 설립하여 후배들에게 장학금을 지급하고 있다.
하선호가 당진 면천에서 영인면 신운리로 들어온 비슷한 시기에 하석호, 하화호, 하태길 등 진양하
씨 일가들이 함께 들어왔다.
하석호(河錫鎬, ?~?)도 31세(世)로 자(字)는 치명(致明)이며, 부인은 밀양박씨(密陽朴氏) 박진흥(朴
鎭興)의 딸이다. 아버지는 하재구(河在球)이며 어머니는 김해김씨이다. 하석호의 아들 하성구의 시혜
불망비(施惠不忘碑)가 영인면 신운리에 있다. 묘는 영인면 신봉리에 있다.
하화호(河華鎬, ?~?) 또한 31세(世)이며 자(字)는 경화(慶華)이고 부인은 전주이씨(全州李氏)이다.
생부가 하청원(河淸元)이며 하재순(河在順)의 계자가 되었다. 묘는 음봉면 신수리에 있다.
하태길(河泰吉, 1834~?)은 진양하씨 32세이며 아버지는 하경호(河慶鎬)이고 어머니는 경주이씨
(慶州李氏)이다. 하태길의 자(字)는 여천(汝天)이며 부인은 여산송씨(礪山宋氏)이다. 하태길의 아들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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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산입향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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