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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만,아버지께서는다섯째아들의진로에대한고민을대충넘기시는분은아니었

남,
다. 어려운 가정형편 속에서도 아버지는 선생의 공부에 대한 열정을 꽃가지 꺾듯이 쉽사


리꺾지는않으셨다.


당시대학등록금이논으로환산하면3마지기정도였다는데,아버지께서소유하고계신


재산은전부를합쳐보니논이4마지기였다고한다..


형들과동생들은농사일을돕는데,다섯째만공부욕심을부리는거같아보였다.그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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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만,부모님은착하고성실히학업에정진하는그를믿어주었고,당시국가적으로경공업
이 주요산업으로 자리 잡고 있었던 시절이기에, 학업성적이 우수했던 그는 천안의 명문고
인천안공고를진학하게되었다.매우기뻤으나한편으로아버지와어머님께감사하고또
한편으로형제들에게는죄송스런감정이교차했다.그의심성을엿볼수있는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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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학성적이좋았기때문에학생들이제일선호하는전기과에서학교생활을할수있었
다.당시에는전기-기계-건축-토목-화공순으로인기가있었다고한다.그렇지만,이규필
선생이사는동네에는전기가들어오지않았다.그랬던그였기에,전기분야공부가전혀흥
미롭지않았다.그렇게2년을보내고,고3이되기직전에또다시근엄하신아버지앞에앉
았다. 대학에 가고 싶다고 말씀드렸고, 아버지는 중3시절 공업고등학교를 제의해 주신거
와 같이, 이번에는 교육대 진학을 권유하셨다. 이유는 간단하다. 학비가 저렴했기 때문이
다. 없는 살림에 교육대학을 보내준다는 아버지의 권유는 이규필선생 입장에서는 거부할
이유가전혀없었다.
그렇게그는공주교대를진학하였고,자연스레교육자의길로향하게되었다.
교육인생40년6개월
이규필선생의올해나이70세.
그의평생중절반이상을교단에섰고,분필을잡았다.가르친학생들의수는헤아릴수
가 없을 것이다. 1976년 9월, 20대 초반의 나이로 당진지역 유곡초등학교 발령을 시작으
로 당진 북창초, 천안 목천의 덕전초, 풍세의 용정초, 성환초, 직산의 양당초, 아산지역의
백석포초등학교,음봉초등학교까지학생들과긴밀한관계의교사로재직·교육을하다가,
2005년교감으로승진하여천안부성초등학교에서교감을하던중2011년교장승진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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