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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괭이와 낫을 들고 합류했으며, 심지어 현역 군관들까
주가 무너진다면, 세력이 속속 확대되는 반군의 기세는
지도수백명이모여들었으니반군의기세은하늘을찔렀
곧바로천안과수원을경유하여한양도성으로진격할수
다. 불과 수일 만에 호서 일대는 이몽학으로 천하가 바뀌
있는 통로였기 때문에 홍주는 ‘인후(咽喉)’ 즉 조선의 목구
고있었다.
멍과같다고여겨진지역이었다.
임진왜란의 개전 초 왜군의 침입 사실을 겨우 나흘 후에
그러나홍주성에상주하는경비군사는일백명이채안되
나 파악한 조정이었다. 늦게나마 대대적인 군사를 모아
었고, 반면 나날이 불어난 이몽학의 반란군 세력은 이미
토벌군을 파병하고자 할 때, 당대 명장 이일 장군의 휘하
일만 명에 이르렀다. 반군의 기세 앞에서 도망치거나 목
에 모인 사람이 불과 30명이라는 사실로 비추어 전국을
숨을구걸하는관리의초라한모습을보고들은백성들은
비롯한호서지역의민심또한어떠하였는가를알수있는
곧이어 닥칠 홍주성의 모습 또한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
대목이다. 당시 홍주는 호서지역에서 가장 큰 고을이었
라고 여겼다. 고압적이던 위정자들은 제 살길 찾아 가솔
고, 서해의 관문이요 태안반도의 해로를 거쳐 중국을 왕
을 데리고 도망을 준비하기에 바빴고, 평상시 흉폭하게
래하는 요지였다. 만일 서부 일대의 교통 중심지였던 홍
백성의고혈을쥐어짜던아전들은자신의가족을미리피
12 ChungnamCulturalMagazine! 2022! No.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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