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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산의 서원 역사와 서원 복원의 필요성
이제다음에서는, 조선도학의 시조한훤당(寒暄堂) 김굉필(金宏弼:
1454~1504) 학단(學團)의학문경향을고찰함으로써김구가주창했던
지치주의의사상적, 정신적배경인도학사상의일면모를엿보기로한
다.
3. 한훤당학단(寒暄堂學團)의 학문 경향
?전고대방(典故大方)?에의하면자암김구는김굉필의문인으로기
록되어있다. 그러나문인으로보기에는어려운점이있다. 김굉필은
1498년에무오사화를만나평안도희천(熙川)으로귀양을 갔다. 이때
김구는 11살이었다. 그 이전에 김굉필을 직접 만났는지도 의문이고,
그에게배울기회가있었는지는더욱의문이다. ‘자암기년록(自庵紀年
錄)’에 사승 관계를 언급함이 없는 것은 사실대로 기록한 것이라고
하겠다. 다만, 후일의 기묘명현 다수가 김굉필의 학통과 직간접으로
연결되어있고, 김굉필의학문과사상에영향을받은학자가많았다.
김구역시김굉필을 사숙(私淑)하였을 것으로짐작된다. 김굉필의수
제자인조광조와‘지동도합(志同道合)’한처지임을고려할때김구또
한한훤당학단의일원으로보는것이좋을듯하다. 지치주의도학파
의 개혁정치는 사실상 김굉필의 사상에 근원을 두었다는 점에서 그
학단의 사상적, 학문적 경향을 살펴보는 것이 순서라고 생각한다.
한훤당김굉필은고려말엽정몽주가단서를열어놓은도학을하나
의학문경향으로 승화시켰다. 김굉필은‘조선도학의시조’로일컬어
졌으며, 이후4백여년동안도학자의전형으로받들어졌다. 김굉필이
씨를 뿌린 도학은 학문과 정치의 기준이 되었다. 조선의 선비들은
김굉필을본받아?소학?을통해근기(根基)를배양하였고, 그기운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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