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禮山의
흑치상지(黑齒常之)(630~689)
백제말기의장군으로임존성을중심으로부흥운동
을전개하였다.
삼국사기에는백제서부출신으로기록되어있으나
구체적으로흑치가어느곳인가는정설이없다.의자
왕에의하여왕족복신을대신하여임존성주로임명
받고부임하면서백제멸망을보게된다.흑치상지는
청년장군으로7척이넘는키에용감하고지략이뛰
대흥 임존성 백제부흥군위령제
어난전형적인군인이었다.멸망직후임존성이이전
성주복신에의하여접수되자그는부대를이끌고사비성으로가소정방에게항복하였다.그러
나왕이하여러대신등이수모를받는것을보고수하장수들과함께적지를탈출하여복신의
부흥군에합류하고임존성을중심으로거병하여10여일만에그수효가3만에이르렀다고한
다.그기세는사뭇커일시에200여성이호응하였다.
이에나?당연합군은원병을보내어사비성의포위를뚫고웅진에이르는식량수송로를확보
하게되니부흥군의기세는쇠퇴하게되었다.
여기에겹처부여자진과복신의주도권싸움으로자진이처형되고복신과도침의불화로도침
이참형되는적전분열양상이계속되었다.다시복신과풍왕과의반목으로복신이풍왕한테죽
임을당하는지경에이르러부흥군의내분은극에달한다.
흑치상지가당나라에항복한시점은정확하지않으나주류성이함락된후가아닌가추측된다.
부여융의집요한투항권고와중국특유의미인계공작에걸려들어당나라에항복하고마지막
으로지수신이지키는임존성을사타상여와함께공격하여함락시켜백제부흥운동의잔맥을
끊는일을했다.
당나라로건너간그는좌령군원외장군양주좌사가되어토번(티베트),돌궐을치는데공을세
워,그관직과신임이중국사람보다두터워벼슬이연연도대총관연국공에까지이르렀다.국
공(國公)이판은당나라에서9등급으로분류되어있던귀족직위중세번째로식읍300호를소
유하게되어있었다.
그뒤측천무후의통치때응양장군조회절과더불어반란을일으키려한다는주홍등의무고로
옥에갇혔다가처형되었다.689년10월9일(양력11월26일)이었다.그러나『구당서』흑치상
지전에는『묘지명』과달리옥중에서목매어죽은것으로되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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