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 36페이지

12페이지 본문시작

서산의 문화인물
안 견
몽유도원도를 그린
안견( 堅, 생몰년 미상)은 조선 초기의 대표적 화가이다. 본관은 지곡( 谷), 자는 가도(可 ) 또는
득수(
), 호는 현동자(
) 또는 주경( 耕)이다. 세종연간(1419~1450)에 가장 왕성하게 활동하고
문종과 단종을 거쳐 세조 때까지도 화원으로 활약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세종 때에 도화원(
의 종6품 벼슬인 선화(
)에서 체아직(
)인 정4품 호군으로 승진되었는데, 이는 조선 초기의
화원으로서 한품(
)인 종6품의 제한을 깨고 승진한 최초의 예가 된다.
신숙주(
)의『보한재집(
에 의하면 그는 본성이 총민하고 정박(
)하였다고 하며
안평대군(
君)을 가까이 섬기면서 안평대군이 소장하고 있던 고화(古 )들을 섭렵함으로써 자신의
화풍을 이룩하는 토대로 삼았다.
안견의 화풍은 지금 일본의 덴리대학(
) 중앙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는 몽유도원도(
)나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그의 전칭작품(
)인 사시팔경도(
景 ) 등을 통하
여 알 수 있다.
이 작품들을 보면 안견이 북송(
) 때의 대표적 화원이었던 곽희(郭 )의 화풍을 토대로 하고 그밖에
여러가지 다른 화풍의 요소를 수용하여 자기나름의 독특한 양식을 이룩하였음을 알 수 있다. 이 점은
비단 작품에서뿐만 아니라 신숙주의『보한재집』
에 있는 화기( 記)나 김안로(金 ?)의『용천담적기
記)』등의 기록을 통해서도 확인된다. 그는 산수화에 가장 특출하였지만 그밖에도 초상
12 |
2010_12

12페이지 본문끝



현재 포커스의 아래내용들은 동일한 컨텐츠를 가지고 페이지넘김 효과및 시각적 효과를 제공하는 페이지이므로 스크린리더 사용자는 여기까지만 낭독하시고 위의 페이지이동 링크를 사용하여 다음페이지로 이동하시기 바랍니다.
상단메뉴 바로가기 단축키안내 : 이전페이지는 좌측방향키, 다음페이지는 우측방향키, 첫페이지는 상단방향키, 마지막페이지는 하단방향키, 좌측확대축소는 insert키, 우측확대축소는 delete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