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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지역의
지명유래
‘법곡동
(法谷洞)
<법곡동의 옛모습>
법곡동에 얽힌 이야기로 순종대왕의 일이다.
불려지고 있다. 그러나 지금은 능미 보다는 법곡
강설봉이라는 정승이 계셨는데 처를 잃어 상중이
동이라고 불리며, 뒷동산에 이방골이라는 데가
었다. 그날 마침 궁궐에서 입궐하라는 명을 받아
있는데 이것은 옛날에 이방들이 살던 곳이라 하
정승께서는 입궐을 하지 않으면 안되게 되었다.
여 유래 되었다고 한다.
입궐은 했으나 상을 당한 터이라 묵묵히 앉아 계
현재사진법곡동(法谷洞)은 본래 온양군 읍내면의
셨다. 임금님과 함께 회의하는 중에도 정승은 말
지역인데,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능미,
한마디 아니하셨다. 임금님께서 괴이 여겨 그 사
가무일부를 병합하여 법곡리라 하여 아산군 온양
연을 물어 본즉“내상을 입고 입궐한 자가 무슨
면(읍)에 편입 되었다가 1986년 온양시로 승격됨
말을 하겠사옵니까?”정승이 대답했다.
에 따라 법곡동이 되었다.
임금님은 깜짝 놀라시며 말씀하시길“그럼 장례
법곡 1통은 마을입구 강청묘 산에 정경부인 묘
는 치루었는가?”
소가 있었으며 지금도 그 말이 유래되어 능미라
정승은“장례는 무엇입니까? 신위주도 안잡아 놨
고 칭한다. 그러나 지금은 아파트 부지이다.
습니다”
2통은 마을 모양이 전봇대와 같다하여 전주고
임금 왈 온양골에 내려가면 내가 신위주를 잡아
개로 불린다. 능미 서쪽에 있는 마을이다.
놓은 데가 있노라 그곳에 가서 상을 치러라 하시
며 친히 하사하셨다.
정승께서 온양에 내려와 관가에 이 이야기를 하
니 원이 깜짝 놀라며 하는 말이 어떻게 믿느냐고
하니 정승께서는 임금님께 내리신 하사장을 제시
했다.
친필로 신위주를 준 것을 확인하고 허락하였다.
그래서 그곳에 묘자리를 잡았다.
묘는 강경묘라 하는데 이 뜻은 강씨 정경부인의
묘이다. 그래서 법곡동에는 능묘가 있어 능미라
<법곡동의 현재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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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산타이딩
A-san of Tiding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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